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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4.5t짜리 발명품을 선보인다. 물건의 정체는 ‘블록버스터’라는 초대형 폭탄이었다. 이후 블록버스터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거나 유명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를 상징하는 단어로 의미를 확장한다. 요즘에는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에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를 쓴다.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에 의하면 1950~2010년 해외작가의 국내 전시는 파블로 피카소가 29회로 가장 많았다. 이어 마르크 샤갈 17회, 살바도르 달리 16회를 기록한다. 앤디 워홀 역시 11회로 이름값에 부응할 만한 전시횟수를 자랑한다. 이는 승자독식의 현상이 미술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고전음악이 블록버스터 현상에서 자유로울까. 모차르트나 베토벤 공연이 차고 넘치는 현실 또한 미술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의 눈높이가 낮아서, 흥행의 부담 때문에, 정부지원이 열악해서라는 이유가 등장한다. 결국 고급예술이라 불리는 미술이나 고전음악 모두 유행상품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다.

물론 문화예술에 빠진 ‘덕후급’ 인사들이 있기는 하다. 이들은 시간을 쪼개 공연과 자료수집에 몰두한다. 해외에서 개최하는 공연과 전시회를 관람하려고 적금을 붓거나 동호회에 가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문화예술시장의 든든한 허리역할을 해주지는 못한다. 평론가에 버금가는 식견을 가진 존재지만 아쉽게도 이들 사이에서도 계급관계가 드러난다. 이를테면 ‘저는 오페라는 즐기지만 록음악 따위는 상종하지 않아요’라는 선민의식이 이에 해당한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교육자본에 따라서 문화의 취향이 다르다는 연구결과를 내놓는다. 예를 들어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만화, 추리소설, 스포츠 등의 대중문화를 선호한다는 논리다. 1970년대 프랑스에서 제한적으로 행해진 연구결과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미디어를 통한 문화 향유의 기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중세 유럽으로 회귀하려는 이상한 종족이 존재한다. 그들은 문화예술을 자신을 포장해주는 일종의 수입명품 정도로 취급한다.

오페라와 미술애호가라는 연유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잠시 근무했던 인물이 떠오른다. 그는 무슨 일을 했나. 블랙리스트 업무에 몰두하다 보니 과거 주장했던 문화융성과는 별 상관이 없는 시간을 보냈음이 밝혀졌다. 문화융성에서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폼이나 잡는 천박한 문화계급주의가 아니다. 계급의식에 경도된 자가 국가예산을 주무른다면 이는 무고한 예술가의 밥줄을 끊어버리는 비극을 초래할 뿐이다.

문화예술시장은 일반 기업시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업처럼 무한수익의 창출을 지상목표로 삼지 않는다. 예술가, 작품, 시장이라는 삼각구조만으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문화예술중개자다. 문화 관련 공무원, 비평가, 전시 및 공연기획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은 물론이거니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열린 시각은 필수조건이다.

현대 문화예술시장에서도 계급이 존재할까. 아도르노는 대중매체의 이면에 존재하는 자본주의가 문화예술을 상품으로 전락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이란 문화예술을 독립적으로 향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본주의사회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예술의 대중화’에 반대했다. 문화가 먼저냐 계급이 먼저냐를 떠나서, 일부 자본가의 차별의식은 가뜩이나 침체에 빠진 문화예술 생태계를 어지럽힐 뿐이다.

대한민국 시민 모두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지금도 귀족문화를 흉내내려는 문화계급이 존재한다. 그들은 오로지 돈과 권력으로 예술을 향유하려 한다. 수십만원짜리 와인을 마시면서 바그너를 논한다고 문화예술의 장이 활짝 열리기는 만무하다. 이는 개인의 취향에서 비롯한 호사 취미일 뿐이다. 인격 자체가 짝퉁인데 명품으로 중무장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시 문화를 이야기할 시간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맴도는 문화예술중개자는 필요악이다. 창작자의 고루한 현실과, 문화예술을 산업으로만 판단하지 않으며, 힘없는 다수를 향한 문화공유의 가치를 아는 인물이 절실한 상황이다. 바로 지금부터, 계급을 초월한 진정한 문화상생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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