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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이신가요?”(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아니요, 취재 나온 기자입니다.”(김훈 한겨레신문 기자) 

신문과 방송에서만 보던 두 유명인사를 실제 처음 봤던 곳은 무수한 죽음의 참사 현장이었다. 월드컵 분위기가 무르익던 2002년 4월15일. 승객과 승무원 166명을 싣고 베이징에서 이륙한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 인근 돗대산에 추락했다. 당시 사건·사고를 주로 취재하는 사회부 사건팀 기자였던 필자는 현장에 급파됐다. 이곳에 소설 <칼의 노래>의 김훈 작가도 사회부 기자로 왔다. 그해 1월, 화려한 언론 경력의 54세 베스트셀러 작가는 사건기자로 변신해 화제가 됐다. 한 일간지는 “그의 <칼의 노래> 주인공 이순신 장군처럼 ‘백의종군’한 셈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무현 후보도 이회창, 이부영, 정동영 등 다른 유력 정치인들처럼 현장을 찾아 사고수습 지원을 약속했다. 유족들을 찾아다니며 위로의 뜻을 전하는 중 머리 희끗한 중년의 기자를 유족으로 알고 말을 건넨 것이었다.

짧고 어색한 만남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로 갔다.

‘김훈 기자’는 다음날 ‘정치인들의 위로방문’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유족들이 방문한 정치인들을 향해 격렬하게 항의하면서도 한결같이 “도와 달라”며 절규하는 현장을 담았다. 글은 “유족들은 18일부터 제가끔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러 병원을 뒤지고 있다. 그들은 나라를 믿기 어려운 국민들처럼 보였다”로 끝맺었다. 부연하자면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도록 신원이 확인되는 사망자는 3명에 불과할 정도로 당국의 대처는 더뎠다.

노무현 후보는 시민들의 열정과 참여 속에 민주당 경선을 통과했고 겨울 본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꿈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에 시달리고 가로막혔다. 그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 바꾸고자 했던 현실은 친구 문재인 대통령의 과제이기도 하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고, 우리 생활 곳곳에 4차산업 혁명의 물결이 치고 있다. 하지만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힘들고 억울한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일터에서 삶을 마치는 이 어이없음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일하다 병든 경우를 빼고도) 971명으로, 전년보다 7명 늘었다. 2001년부터 따지면 일터에서 숨진 노동자는 연평균 2200명을 넘는다.

주로 건설 일용직, 하청업체 직원, 비정규직, 현장실습생들이었다. 발전소 하청 노동자로 새벽에 홀로 일하던 스물네 살의 김용균씨는 기계에 끼여 죽임을 당했다. 이민호군은 특성화고 3학년 현장실습 중 장비에 깔려 사망했다. 지난달에는 서른다섯 살의 비정규직 집배노동자 이은장씨가 돌연사했다. 스물다섯 살의 건설 노동자 김태규씨는 화물용 승강기에서 추락해 숨졌다.

‘나라를 믿지 못하는 국민처럼’ 유족들의 몸부림도 여전하다.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을 제도를 마련해 달라는 너무나 기본적인 요구들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오랜 아우성 끝에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김용균법)이 마련됐지만 정부의 하위 법령에 그 위력은 떨어졌다. ‘김용균법에 김용균이 없다’는 탄식에도 재계는 물론 정부와 국회는 너무나 무덤덤하다. 산재 발생 사업장의 업주 처벌을 규정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실현은 기약이 없다.

그래서일까, 김훈 작가가 생명안전 시민넷의 공동대표로 지난 14일 발표한 기자회견문은 그의 17년 전 칼럼과 비교해 시간적·공간적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무수한 죽음들은 다만 통계 숫자로만 인식되었을 뿐, 아무런 대책도 반성도 없이 방치되어 왔습니다. 어째서 우리나라 대통령과 국회와 행정부는 날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무수한 죽음을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까. 살려 달라는 것입니다.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차별 없이 단결권을 보장하고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이 지체 없이 비준되길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욕심일까. 국제사회의 눈총과 압박이 높지만, 한국적 특수성이나 경제성장을 위해 고려할 게 많다는 논리는 강고하다.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파이의 크기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합니까? 앞서 말한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열다섯 살 노동자) 문송면군 사건, 이만하면 중대한 과실이 될 만도 합니다. 왜 구속하지 않습니까? … 저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파이를 크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초선 의원 때인 1988년 7월 첫 대정부질문에서 쏟아낸 울림 역시 세월의 공백을 느낄 수 없다.

<박재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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