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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주인공(르네 젤위거)은 새해맞이 파티를 망친 뒤 자신의 집에서 잠옷 차림으로 레드 와인을 마시면서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를 온몸으로 따라 부른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드럼 치는 흉내까지 내는 주인공의 연기에 보는 이들은 긴장감에서 해방되고 속 시원함마저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집에서 가장 편한 옷차림으로 누리는 즐거움을 갈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엔터테인먼트그룹 SM C&C가 만 20~59세 2400여명을 대상으로 ‘여가시간에 어디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라고 물었더니 67%가 “집에 머문다”고 답했다. 이들 중 70%는 “집이 제일 편하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들어 집에서 운동을 즐기는 ‘홈트(홈+트레이닝)’, 맛집 요리와 가벼운 술을 즐기는 ‘홈술’ 등 오로지 집에서 여가를 즐기는 ‘홈족’이 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빗댄 홈 루덴스(Home Ludens)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홈 루덴스가 갑작스럽게 생긴 문화는 아니다. 덴마크는 휘게(Hygge)의 나라다. 휘게는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한다. 눈이나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촛불 켠 방 안에서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는 것, 그게 바로 휘게다. 핀란드에는 팬츠드렁크(PantsDrunk)가 있다. 텅 빈 집에서 가장 편안한 옷차림으로 음악 등과 함께 혼술을 즐기는 것이 팬츠드렁크다. 우리의 조상들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상투를 풀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바지를 내린 뒤 바람에 온몸을 맡기는 풍즐거풍(風櫛擧風)을 즐겼다고 한다.
미스카 란타넨이 쓴 <팬츠드렁크>에는 팬츠드렁크를 해야 하는 100가지 이유가 있다. “오늘 할 일을 다 했으니까”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어서” “너무 피곤하니까” “내일은 금요일(요일은 특별히 중요하지 않다)이니까” 등인데 100번째 이유가 “늘 핑계는 있는 법이니까”이다. 팬츠드렁크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물은 5가지다. 뭘 해도 괜찮은 텅 빈 공간(집이 가장 좋다), 적당한 양의 술, 편한 옷, 디지털 기기 하나, 그리고 가벼운 먹거리 등이다. 오늘은 목요일이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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