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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 옛날짜장면, 카레에 감자가 사라졌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일이 아주 먼 옛날 같지만 불과 한 달 반 전의 일이다. 대체로 식품 가격이 올라가면 개명되는 일이 많은 것이 농산물이다. 항렬은 늘 ‘금’자 돌림이다. 금치, 금겹살, 금파, 금란 등이다. 근래 태어난 막내가 ‘금자’다. 감자탕에 감자가 사라졌다면서 감자탕집 업주가 언론에 나와 돼지등뼈보다 더 비싼 감자값 때문에 마진이 전혀 남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한다. 양파값이 폭등하면 중국집 업주가 나와 짜장면의 주재료인 양파값이 올라 손님 테이블에 반찬으로 나가는 양파 한 조각 내어놓기가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한다. 지난봄 수제비 한 그릇 사먹는데 실하게 감자가 담겨져 나와서 어찌나 황송하던지.

지난해 가을감자를 좀 덜 심은 데다 감자 저장량이 부족했다. 남녘에서 시설재배로 출하되는 봄감자가 추위로 출하가 늦어지면서 일시적으로(!) 감자값이 강세였다.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수미감자 20㎏ 도매가가 무려 10만원대였다. 대형마트에서는 감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로 한국판 감자 대기근이었다. 하지만 마트 한 코너에는 흙도 안 묻은 상태의 굵은 감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호주산 감자였다. 농산물이 국경을 넘나들 때는 반드시 검역을 거쳐야 한다. 흙이 깨끗하게 제거된 상태에서만 수출입이 가능하다. 흙은 외래 병해충 유입의 통로가 될 수도 있고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진그룹 일가가 검역도 안 거치고 전 세계의 산해진미를 들여와 먹은 일은 국가에 위해를 끼친 중대 범죄이고 검역당국은 직무유기다.

각설하고 굵직한 호주 감자를 보니 채 쳐서 튀겨먹기 딱 좋게 생겼다. 이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나오는 굵고 실한 감자튀김 원료이기도 하다. 감자가 비싸져도 감자튀김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 봉지만 뜯어서 튀기면 되는 완제품 형태의 냉동감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자 대기근도 금세 끝날 것이란 것도 빤한 일이었다. 날씨가 풀리면서 시설 봄감자가 본격 출하될 것이고, 노지봄감자가 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지감자까지 쏟아지면서 이제는 폭락이다. 7월1일 기준으로 감자 20㎏ 도매가격은 3만600원. 지난봄에 비해 4분의 1 수준도 안된다. 작년엔 감자 자리에 달걀이 있었다. 한 판에 1만원입네 어쩌네 하다 지금은 한 판에 채 4000원 값을 지키지 못한다. 값이 오를 때는 당장 감자를 못 먹어서 죽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떨어질 때는 ‘물가안정’이라는 묘한 기조가 만들어진다. 보통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물가안정을 위해 수입을 한다. 그 사이에 수확철이 다가오고 결국 폭락을 하는 이 지겨운 가풍은 ‘금’이라는 귀한 이름을 얻었다가 어느새 ‘똥’이란 이름으로 내쳐지곤 한다. 문제는 얄궂은 소비심리라는 것이 ‘금자’였다고 소문이 나면 금자가 감자로 돌아온 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안 먹어도 안 죽는 식품들이고 대체품도 많다 보니 그럭저럭 지내다 ‘많이 싸졌네, 먹어볼까?’라는 생각이 들 때는 이미 감자들이 썩고 있다. 폭등만이 아니라 폭락에 대한 보도도 위험하다. 언론에서는 엄청 싸서 내다버린다더니 왜 이리 비싸냐며 따진다. 소비자 가격이 형성되는 수많은 과정이 사라지고 내다버리는 ‘스펙터클’만 다루기 때문이다. 여하튼 불친절한 금자씨가 ‘친절한 금자씨’로 귀환했다니 많이 먹는 수밖에. 벌써부터 농촌의 아는 형님들이 감자 부쳐준다는 연락이 온다. 감자나 쪄야겠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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