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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주목받고 있다. 전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사람이었다는 것 말고는 잘 아는 것도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유엔 연설’을 검색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보다 더 주목을 받은 것은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한 연설이다. 기성세대에 기대기보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권한을 확대하자는 취지의 청년 행사에 연사로 나선 것이다. ‘네 이름과 목소리를 찾고 너를 세상에 말하라’는 방탄소년단의 연설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현장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까지 참석했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열린 유니세프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파트너십 출범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 농민들을 비롯해 전 세계 농민들도 열심히 유엔 활동을 펼쳐왔다. 무려 17년 동안이나 말이다. 국제농민연대조직인 ‘비아캄페시나(농민의 길)’의 회원조직인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한국의 농민단체는 그동안 ‘농민권리선언문’이 유엔에 정식 채택되도록 노력해왔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 9월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드디어 ‘농민권리선언문’ 채택 결의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오는 11월 유엔 본부에서 선언문이 정식 채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선언문은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농업이주노동자들 포함)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명문화하는 것이다. 이 선언문이 채택되면 각국 정부는 이 선언의 조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명문화하고, 토지공개념에 따라 농지의 소유·보전·이용을 철저히 하자는 요구를 농민권리선언의 취지에 포함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

17년 동안 선언문 채택에 가장 크게 반대한 미국이 올해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탈퇴한 것도 솔직히 채택에 한몫을 했다. 이번 선언문 채택에는 33개국이 찬성했고, 반대 3개국, 기권 11개국이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기권표를 던졌다. 죽도 밥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찬성의 의미는 각국 정부에서 이 선언문의 조항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농민과 농촌 주민 당사자들과 많은 협의를 하겠다는 뜻을 포함한다. 그런데 기권은 분위기 봐서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실제로 주무부서인 농림축산식품부 담당자의 답변은 ‘고민해보겠다’ ‘각 부처랑 논의해 보겠다’ 수준의 답변뿐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농식품부 내에서도 담당자들 말고는 선언문이 상정됐는지조차도 모른다. 그러니 ‘농민권리선언문’의 내용은 더욱 모르는 실정이다. 하지만 유엔에서 공식 결의안이 채택되면 한국 정부도 농민들의 권리 문제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농민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농민도 농민의 이름과 목소리를 찾고, 농민을 세상에 말하기 위해 유엔에 섰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주세요. 조금씩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나갑시다”라는 방탄소년단의 유엔 연설은 농민들이 더 먼저 오래도록 외쳐왔던 이야기이다. 농민들의 목소리를 내고, 이 땅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솔선하여 보여주었다. 11월에 유엔에 다시 한번 이목을 집중시켜 보자. 방탄소년단 또래의 청년들도, 세계의 농민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얼마나 높이는지를.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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