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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3명 중 2명은 대체 형벌이 마련될 경우 사형제 폐지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다. 단순히 사형제 찬반을 물었을 때는 폐지 찬성 비율이 20.3%에 그쳤으나, 대체 형벌 도입을 전제로 할 경우는 폐지에 동의하는 비율이 66.9%로 치솟았다. 한국은 1997년 12월30일 이후 2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이미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16회 세계사형폐지의날 기념식이 열려 인혁당재건위 조작사건 사형수 유족 이영교씨가 발언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유엔에 따르면 약 160개국이 법률적·실질적으로 사형을 폐지한 상태이다. 유럽연합(EU)은 사형제를 유지하는 나라를 회원국으로 받지 않는다. 사형제 폐지가 문명국·인권국 여부를 가르는 핵심 지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사형제 폐지를 촉구해온 우리는 또 한번 이 반문명적·반인권적 제도의 철폐를 요구한다. 한국은 그동안 수차례 사형제 폐지 입법화를 추진했으나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다. 연쇄살인 등 강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형 찬성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 형벌이 도입된다면 사형제를 폐지해도 좋다는 의견이 다수로 나온 만큼, 여건이 성숙됐다고 본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체 형벌로는 가석방 없이 평생 복역하는 ‘절대적 종신형’과 일정기간 복역 후 가석방될 수 있는 ‘상대적 종신형’이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절대적 종신형 또는 ‘절대적 종신형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부과’하는 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인권위 토론회에서 발표한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는 “절대적 종신형은 자유를 회복할 권리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형태의 ‘사형’으로 평가된다”며 “사형을 폐지한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상대적 종신형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상대적 종신형을 도입하되, 최소한의 수감기간을 30년으로 설정하고 범죄피해자나 유가족에 대한 추가 보상방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인권위는 지난달 사형 집행을 금지하고 사형 폐지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자유권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을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이 의정서에는 85개국이 가입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에선 한국과 미국, 일본, 이스라엘만 미가입 상태다. 한국이 가입하면 국제사회를 향해 사형제 폐지를 사실상 공식 선언하는 의미를 갖게 된다. 정부가 결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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