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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어린이·청소년들의 인적자본 수준이 세계 2위라는 국제기구의 조사결과가 나왔다. 세계은행(WB)이 11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전 세계 157개국을 대상으로 측정해 처음으로 발표한 인적자본지수(HCI) 평가에서다. 인적자본지수는 그 나라의 보건·교육 상태를 반영해 오늘 태어난 아이가 18세까지 얻게 될 인적자본의 총량, 즉 미래 생산성을 계량화한 것이다. 세계은행 조사 결과 한국의 인적자본지수(0~1 사이 값)는 0.84로 싱가포르(0.88)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일본(3위), 독일(11위), 영국(15위), 미국(24위), 중국(46위) 등을 모두 앞선다. 한국 어린 세대의 경쟁력이 이들 선진 강대국보다 우수하다는 의미다.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 세대의 인적자본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조사결과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과연 한국 어린이·청소년들의 우수한 인적자본 수준이 이들 개인과 국가의 발전과 행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인적자본 상위권 배경도 논란거리다. 세계은행이 인적자본지수를 측정한 요소들은 학업예상기간, 학업성취도 등 학교교육 부문과 5세까지의 아동 생존율, 60세까지의 성인 생존율, 5세 이하 아동 발달장애 비율 등 의료·보건 부문 등이다. 한국이 의료·보건 부문에서 선진국들보다 월등히 높을 리는 없다. 한국 학부모들의 유별난 교육열에 힘입어 교육 관련 평가 요소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어린 세대의 우수한 인적자본이 성인이 됐을 때 얼마나 제대로 발현될 수 있는가다. 이번 지수는 18세까지 얻게 되는 생산성을 측정한 것이다. 이후 이들이 직업을 갖는 등 사회활동을 할 때 생산성은 진정으로 발현될 기회를 갖는다. 하지만 개인의 적성은 무시하고 오로지 명문대 입학만을 위해 ‘입시기계’가 돼야 하는 청소년기와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기를 지나면서 우수한 인적자본은 역량을 발현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할 가능성이 크다.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도 부족한 한국에서 사람, 즉 인적자본은 사회 발전을 위한 최대의 자산일 수밖에 없다. 어린 세대의 우수한 경쟁력이 성인이 돼서 제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한국 사회의 시스템이 개혁되지 않는다면 세계 2위라는 인적자본지수는 공허한 숫자놀음에 그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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