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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명절의 김지영씨들

opinionX 2017. 1. 31. 11:24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사연을 품고 있다고 했던 톨스토이의 글을 흉내 내자면, 명절 한국 가정의 모습 또한 불행의 디테일은 다르지만 행복의 표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과일 박스와 선물 꾸러미를 들뜨고 그리운 마음과 함께 실은 출발은 산뜻하다. 극심한 정체가 계속되고 ‘가다 서다’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 오면 그것은 그것대로 왠지 우리가 헤쳐가야 할 숭고한 고난의 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중간중간 부모님께 보란 듯 정체 상황을 보고할 때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우리가 갑니다’라는 생각도 들고, 1년간 다하지 못했던 효도를 속죄하고 빚을 탕감받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닿은 고향집의 문턱에서 반가움을 짐과 함께 부리고 나면, 이제 목표는 그 집을 탈출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미션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두 100개 빚기, 모둠전 200장 부치기, 나물 다섯 가지 무치기, 산더미 같은 설거지 하기 등등. 미션은 과도한 육체적 노동에 그치지 않는다. 화장실 못 가기, 미소 짓기, 언제나 순종적일 것, 때로는 보고 듣고 때로는 못 보고 못 듣는 신공 발휘하기. 이 놀라운 감정 센서는 명절 내내 작동하지만 대체로 음식을 놓고 둘러앉은 저녁시간 이후 그 기능을 최대한 발휘한다. ‘사촌이 땅을 샀다더라’ 유(類)의 시샘과 걱정, 잔소리 등이 오가고 가끔 언성이 높아질 때 특히 그러하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면 지친 몸과 마음은 탈출을 명령한다. 그것은 며느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 딸,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다. 불편함의 끝에는 성스러운 의식처럼 설 아침 차례와 세배가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안녕’ 하고 돌아 나오는 정체길에서는 효도빚을 탕감받고 출옥한 죄인의 푸념이 있게 마련이다. 과도한 육체적, 감정적 노동에 시달렸던 아내의 논평이 정체길만큼이나 무한정 이어지게 마련인데, 대개는 남편의 인내심이 폭발하고 그 분노가 정체길의 짜증과 버무려져 ‘명절망국론’과 같은 말도 안 되는 논쟁에 이어 냉전에 이르렀을 즈음, 차가 여자의 집에 당도한다. 시댁에서 주눅 들고 남편에게 화가 나있던 여자는 친정집에 들어서자마자 소리가 커지는데, 짐들을 던져놓고 널브러지면서 게으르고 말 많은 여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딸은 엄마에게 이것저것 명령하기 시작한다. ‘느끼해 죽겠어, 커피 좀 끓여줘’로 시작해 이틀 내내 묵언수행하던 여자의 말문이 터진다. 시댁에서 무뚝뚝하고 철부지 아들 같았던 남자는 처가식구들 앞에서 붙임성 있고 믿음직하며 배려심 많은 썩 괜찮은 사위로 변신한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있다. 한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여자’, ‘며느리’, ‘엄마’로 길들여지고 결국 ‘맘충’이 되는지에 대한 일종의 사회학적 보고서 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를 상징하는 ‘김지영’은 그 무한한 존재의 가능성을 상실하고 ‘맘충’으로 전락해 우울증을 앓는데 결국 목소리를 내지 못한 여자들의 말을 복화술처럼 대신 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가령 명절에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 하는 게 뭐가 고생이야? 명절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음식 만들고, 먹고, 그러는 재미지”라고 하는 시어머니에게 그녀는 친정엄마로 빙의되어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명절은 가족이라는 사적인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축제이자 의례이다. 그러나 명절은 가족의 구성원을 규율하고 훈육하는 살벌한 현장이기도 하다. 날것의 욕망을 드러내고 결핍과 충족을 재단하는 심판대. ‘누구는 어떻다더라’로 상징되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가족은 지극히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며 속물적인 세계관 위에 세워진다. 좋은 직장, 좋은 학교, 좋은 집 등 구성원들을 자극하고 다음 1년을 다짐하게 만드는 ‘좋은 것’의 목록이란 ‘자본주의’의 규율과 다를 바가 없고, ‘나, 우리’의 배타성으로 연결된다. 명절에 흔히 도마에 오르는 취준생과 미혼의 문제는, 다시금 가족 구성원들을 납작하고 보수적이며 방어적인 세계관 위에 세운다.

속죄, 속물, 쇼윈도, 비교와 경쟁, 배타, 이기심, 보수, 자본, 교묘한 폭력으로 이루어진 한바탕의 신파가 또 한 차례 지나갔다.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하는 하나의 교본에 또 어떻게 저항하고 쳐내야 하는지의 미션은 남아있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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