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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 소리 나는 대문을 열고 반질하게 닦여 있는 마당을 지나 대청에 올라서면 시집올 때 가마 안이 훤했다는 외할머니께서 웃으며 반겨주셨다.

배우처럼 잘생긴 외삼촌은 해외 근무를 나가 계셨는데 가끔씩 미제 노란 연필을 다스로 보내주셨다. 연필심이 단단해 글씨가 깔끔하게 써져 숙제를 해가면 ‘참 잘했어요’ 바둑이 도장을 받았다. 뭐든 귀하던 시절이어서 연필 한 자루도 지금의 골프채 대접을 받던 때였다.

다들 출가하고 막내 이모만 인근에 있는 학교에 나가고 있는 단출한 생활이어서 방학 때만 되면 외갓집으로 갔다. 말씀이 적지만 미소가 예쁘셨던 외할머니와 어린 나의 수난이 해가 지면 시작됐다. 외할아버지의 주사 때문이다. 낮에는 점잖다가 저녁이 되면 ‘지킬박사’와 ‘변사또’처럼 변해서 주문을 하셨다. 갈치토막이 들어간 김치를 가져와라, 문어가 두껍다, 어란에서 냄새가 난다, 술 한잔에 안주타박이 이어지면 할머니와 나는 집을 나왔다. 동네 정자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고 있으면 외할머니께서 배를 쓸어 주며 괴팍하신 외할아버지 때문에 맏딸인 네 엄마가 근동에 소문난 솜씨꾼이 됐다고 옛날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지금도 어르신들이 모이면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단내가 나는 게 네 엄마 장맛 때문이야. 술맛은 또 어떻고” 하며 술 좋아하시던 외할아버지 때문에 자연스레 익힌 솜씨가 물려 내게로 온 거라고 얘기를 하신다.


외할아버지의 절대 미각을 물려 받은 친정어머니는 신앙이 장 담그는 일처럼 보일 만큼 별나시다. 날 잡아 장 담그는 날에는 무명 흰 한복을 입으신다. 우중충하고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한맺힌 옷같다며 투덜대면 무심하게 소금잔에 향 꽂고 합장하고 절한 다음 소금을 녹이고 녹인 소금물의 윗물만 가만히 떠내 항아리에 담는다, 메주를 넣고 고추, 숯, 깨, 북어 한 마리를 매달아 넣고는 마른 행주질로 마무리하신다.

마당 양지 바른 쪽에는 햇된장이 익어가고, 다른 한쪽에는 엄마의 묵은 씨간장 항아리가 있다. 솜씨는 환경과 물려있나 보다. 이제 나도 젖어들어 우중충하다고 생각했던 무명 한복이 저녁에는 하얀 박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저 옷 좀 봐, 무명 한복이 박꽃처럼 예쁘지! 저 꽃 좀 봐, 박꽃이 무명옷처럼 예쁘지!”

옷 보며 꽃타령 하고 꽃 보며 옷타령 하게 달라졌다. 달라지니 소중한 것이 많아졌다. 언제적 항아리인지 모를 나이먹은 항아리가 얼먹어 금이 가면 물사포질해 손님 초대한 날 상 한가운데 폼나게 놓고 자랑을 한다. 내 자랑에 문득 손님들도 덩달아 감동하며 차려놓은 음식 먹기보다 사진 찍기가 먼저다. 사진 찍으며 이구동성 하는 말 “세월이 예술이네요”다. 소중한 것이 하나 더 늘었다. 투덜이가 바뀌니 장 욕심 내는 놀부가 됐다. 놀부 맘으로 담근 어린 씨간장이 이제 15년이 되며 장독 한쪽을 지키고 있다. 장독 한쪽에 모녀간장이 나란히 있는 걸 보며 나는 부자야, 웃는다.


이효재 | 보자기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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