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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스무 해 남짓 갯내음을 맡으며 자랐다. 그 후에는 서울에 올라와 대부분의 시간을 도회지에서 지냈으니, 억지로 끼워 붙인다면 농촌마을 이장보다는 어촌계원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언제부터인지 귀촌을 꿈꾸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면 안된다며 자치회에서 연일 으름장을 놓던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이웃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마당 있는 집에서 개를 키우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대로 서울과 그다지 멀지 않은 시골마을에 주민등록을 옮겨놓고 15년 전쯤 엉성한 집을 짓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도 꽤 오랫동안 마을은 내게 낯설기만 한 곳이었다. 아침이면 마당에 내려앉는 햇빛을 뒤로하고 일터로 출근해야 했고, 한밤중에 돌아오면 텅 빈 길에 개 짖는 소리만 컹컹 울렸다.

우편함에 들어 있는 대동회 안내 편지글을 읽고 일 년에 한 번 이세를 내러 갈 때 외에는, 마을분들과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었다. 마을에서 모내기를 할 때 몇 차례 막걸리와 안주를 챙겨들고 인사를 간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마을사람들이 내게 관심이 없으니 자유롭기도 했고, 더러 외롭기도 했다.


손바닥만 한 마당과의 전쟁도 버거운 일이었다. 윤구병 선생은 ‘잡초는 없다’고 했지만, 봄날의 그 여리디여린 쑥이 비를 몇 번 맞으며 여름을 나는 사이 내 허리춤까지 자라나, 마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신비를 내가 알 리가 있었겠는가.

어쩌다 우리 집에 들른 마을사람들은 마당을 한 번 휘 돌아보며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풀 좀 베. 제초제 한번 뿌리면 될 걸 이게 뭐여. 귀신 나오겠어.”

친환경 텃밭과 저 푸른 잔디밭은 어디로 사라지고, 이게 뭐람! 내가 지내온 도회지와 불과 50㎞ 남짓 떨어져 있을 뿐인데, 여기서 나는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참으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런 내가 이장이 되다니!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사정이 우리 마을에 있긴 했지만, 시골 삶에 일자무식인 내가 이장 자리를 맡았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염치없는 일이라 여겨져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꽃 한 송이가 피는 데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억겁의 온갖 기운이 작용했듯이, 이장이 된 것 또한 그런 뜻이 있으려니 하며 최선을 다할 뿐.


김소양 | 추곡리 이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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