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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는 거리와 광장 못지않게 정원과 공원으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내가 처음 공원이라는 공간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 몽소 공원에서라는 샹송을 들으면서이다. 옆 사람에게 말하는 듯한 이브 되퇴이유의 음성과 담백한 멜로디에 가본 적 없는 공원의 호수와 벤치, 하늘과 그 위를 날아가는 새들을 한가로이 스케치해보는 것이었다.

몽소 공원이 파리의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모른 채, 노래 가사와 시적인 울림에 빠졌다면, 몽수리 공원은 김채원 소설을 읽으면서 꿈꾸게 되었다.

그녀의 <쪽배의 노래> <겨울의 환> <몽수리 공원에 내리는 가을> 등은 소설이 단지 재미만을 추구하는 이야기 상품이 아니라 언어로 빚은 예술, 그 너머 경지임을 알게 해주었다.

몽소 공원은 파리 도심 샹젤리제 뒤편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고, 몽수리 공원은 파리 남쪽 교외 경계에 있다. 내가 처음 몽수리 공원에 간 것은 파리 첫 체류 시절인 이십대 후반의 어느 늦여름이다. 그곳으로 나를 이끈 것은 김채원의 아름다운 소설뿐만이 아니라, 불문학 전공 시인과 선배 번역자들로부터 날아온 우편엽서 속의 주소지였다. 그들은 엽서 말미에, ‘노르웨이관에서또는 멕시코관에서라고 써서 보냈다.

그곳은 몽수리 공원 건너편에 있는 파리 국제 학생기숙사 캠퍼스(Cite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현지 학생들 사이에서 시테라 불리는 곳이었다. 

시테를 방문하기 전까지 나는 왜 노르웨이관이고, ‘멕시코관인지, 그들은 어떤 형태이고, 어떤 규모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정문은 신전을 방불케 했고, 고목이 우거진 드넓은 정원에 저택(maison, )들이 한 채 한 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노르웨이, 독일, 멕시코, 베트남, 일본, 심지어 인구 2만여 명에 불과한 모나코까지 25개국의 이름들이 저택 앞에서 맞이했다. 건축물들은 자국의 전통과 현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고, 그 나라 학생들이 입주해 있었다. 안타깝게도 거기에 한국관은 없었다. 한국 유학생들이나 단기 체류 연구자들은 동가식서가숙 처지로 이들 나라의 빈방을 빌려 쓰는 형국이었다.

처음 시테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현격하게 달랐다. 경탄과 아쉬움, 서글픔. 시테에 꼭 한국관이 있어야 하는 이유란 무엇일까. 그렇다고 없는 채로 있어야 하는 이유란 또 무엇일까. 세월이 흐르고, 파리를 드나들면서, 가끔 몽수리 공원과 시테에 들러 한국관을 짓는다면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곤 했다.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2017년이면, 시테에 26번째 국가관이 등장한다.

이름은 한국관(Maison de la Coree du Sud)이다.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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