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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주인공 소년 모모는 평생 양탄자를 팔며 세계를 떠돈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에밀 아자르는 소년의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사람 사이 사랑의 진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하밀 할아버지는 죽어가면서 니스로 향하는 꿈을 꾼다. 에밀 아자르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인 <솔로몬 왕의 고뇌>에서도 주인공의 마지막 행선지로 니스를 지목한다.

‘트럭 테러’가 발생한 프랑스 니스 해변. AFP연합뉴스

니스는 어떤 곳인가. 유럽 여행자라면 한번쯤 꿈꾸는 휴양지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곳은 북아프리카와 아랍,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흘러들어온 이민자들의 고달픈 삶이 얼룩진 애환의 항구이다. 이들의 신산한 삶과 자유의 꿈은 이곳 출신인 에밀 아자르와 르 클레지오의 소설들에 아로새겨져 있다. 에밀 아자르의 본명은 로만 카제프,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그는 열네 살 때 홀어머니를 따라 폴란드를 거쳐 니스에 정착한 난민 출신이다.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해서 소설을 썼는데,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 두 이름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두 번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는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다. 그가 스물세 살 때 발표한 첫 소설 <조서>에는 바닷가 언덕의 빈집에 숨어든 아담 폴로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그는 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로 세상과 단절된 채, 언덕과 해변(영국인 산책로)을 떠도는 인물로 제시된다. ‘조서(調書)’조사한 사실을 적은 문서이다. 그러나 소설은 마치 폐쇄회로(CC)TV에 찍힌 장면을 기술하듯 아담 폴로라는 청년의 불안한 의식을 파편적으로 따라갈 뿐, 납득할 만한 진실은 밝히지 않는다.

로맹 가리의 자전소설 <새벽의 약속>은 이민자의 열악한 환경에서 아들이 올바르게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헌신한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이다. 어머니는 니스의 아비 없는 러시아 난민 소년에서 정의롭고 당당한 프랑스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성공해야 한다는 다짐을 아들에게 뼛속 깊이 확인시킨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들은 어머니의 뜻인 법대에 진학하는 한편, 자신의 꿈인 작가의 업()을 시작했고, 동시에 전쟁에 참전했는가 하면, 이후 세계를 무대로 평생 외교관이자 작가로 살았다.

지난 714일 혁명 기념일 밤의 테러를 기점으로 니스는 잔혹성의 시험대가 되었다. 어디까지가 사람의 영역인가. 아침에 깨어나기가 무섭게, 세계 곳곳에서 청년들이 갈 길을 잃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자폭하고, 파괴한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소년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메아리치는 요즘이다. 르 클레지오나 로맹 가리의 삶과 소설이 아무리 감동적이라 해도, 소설로 아프게 되새겨야 하는 진실은 그들로 족하다.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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