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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드릴로 8살 초등학생을 학교 행정직원들이 겁박하여 성추행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일부 언론은 이들을 교직원이라고 썼지만, 이는 잘못이다. 교직원은 교원(敎員) 즉 선생님과 학교의 직원(職員)을 함께 이르는 명칭이다. 선생님은 그 사건 피의자가 아니다.

그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리 짐작했을까? 한 통신사는 기사(記事)에 전동드릴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의 명칭 대신 사무기기라고 썼다. 송곳을 전기로 고속 회전시켜 콘크리트에까지 구멍을 뚫는 기계(機械)가 전동드릴이다. 사무를 위한 기기(機器)가 아닌, 공구(工具)다.

사무기기와 전동드릴, 그 차이는 너무 또렷하다. ‘사무기기’라고 쓴 통신사 뉴시스에 물었다. ‘그렇게 짐작할 수도 있다’는 메마른 답이 돌아왔다. 뉴스 도매상인 이 통신사의 글을 그대로 쓴 신문사나 방송사, 인터넷 매체도 있다.

담론(談論)은 권력이다. 세상 허다한 사물(事物) 즉 사건과 물건 중 ‘오늘의 주제’로 선택된 이야기다. 그날의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그 담론에 쓰인 단어는 권력을 펴는 도구다. 어느 말 하나 쉽게 고를 일이 아니다. ‘시민의 입’인 언론의 언어는 더 바르고 옳아야 한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 ‘사건’을 크게 또는 작게, 아니면 방향을 흩트리려는 의도로 일부러 그 단어를 선택했다면, 이는 더 나쁘다. ‘권력’의 왜곡된 행사인 것이다. 단순히 ‘잘못된 짐작’이리라 생각하고 싶은 이유다. 물론 짐작이라고 해서 책임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짐작(斟酌)의 본디는, 생뚱맞게도 ‘술을 따르는 것’이다. 술 따를 짐(斟)과 술 따를 작(酌)의 합체다. 짐작하건대 술 주(酒) 글자에 똬리 튼 유(酉)는 갑골문에도 나오는 인류 최고령(最高齡) 글자 중 하나다. 지금은 대개 짐작에 이 斟(짐)자를 쓰지만, 원래는 자를 쓰기도 했다. 여하튼 술을 따르는 것이 짐작의 어원(語源)인 것이다.

술은 제사를 지내는 귀한 음식이며, 약(藥)이었다. 병 고치는 의사의 의(醫) 글자에도 들어있는 술은 동전의 양면처럼 뒷면은 독(毒)이다. 그 귀한 약 또는 치명적인 독을 담는 그릇이 갑골문 사람들이 그린 유(酉)자다. 물 수( , 水와 같은 자)가 붙으면 술(酒)이다. 斟酌 또는 酌은 그릇에서 술을 퍼 올리는 되[斗(두)]나 국자[勺(작)] 그림이다. 비유적으로 술 따른다는 뜻이다.

유리가 없던 시기의 토기(土器) 술그릇은 그 안이 보이지 않았다. 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니 응당 조심해서 찬찬히 ‘짐작’해야 했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짐작하면 매를 맞았을 수도 있다.

8살 아이가 견디기 어려운 악마적 공포였으리라. 그 상황을 바르게 짐작하였다면 그 어떤 이도 전동드릴을 사무기기로 착각하지 않았을 터다.

정서적 조세저항이라는 말까지 부르는 ‘13월의 세금폭탄’도 정부의 ‘대충 짐작’의 결과가 아닌지 짐작해본다. 흔하디흔한 도구 프로그램인 시뮬레이션(simulation·모의실험)조차 돌려보지 않았을까? 짐작은,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고래심줄 국민의 세금을 쓰는 이들의 무책임한 짐작이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 짐작이라도 해 봤을까? 사전은 ‘짐작’을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어림잡아 헤아림’이라 새긴다. 말엔 속뜻이 있다.


강상헌 |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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