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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 중반을 지나면서 몸에 큰 고장이 났다. 한동안 병원신세를 진 것은 물론이다. 퇴원해서 집에서 요양하면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였다. 꼬박 1년 반을 집에서 보냈다. 의사 선생의 지시는 책을 보지 말고 무조건 쉬란다. 책을 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아예 볼 수가 없었다.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누워서 TV를 보는 것이다. 대한민국 TV가 얼마나 볼 것이 없는지는 일주일 만에 뼈저리게 깨우쳤다. 어느 날 선배 교수님께서 경과가 어떠냐고 전화를 하셨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너무나 무료하다고 했더니, 웃으시면서 비디오방에 가서 무협비디오나 빌려다가 보라고 하신다. 그냥 소일거리로 켜 놓고 있으란다.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생각도 말고 그냥 시간을 보내는 데는 그만이라며 웃으며 하시는 말씀에 혹시나 싶어 아파트 상가에 있는 비디오가게로 가서 스무 개를 빌렸다. 가게 주인은 좋아라 하면서 30% 할인을 해 준단다.

돌아와 몇 편을 연속 상영했는데 얼마 안 가 볼 수가 없었다. 요즘의 막장드라마와 비슷했다. 아니 막장드라마 같은 중독성도 없었다. 빌려온 돈이 아깝지만 다시 무료한 시간으로 복귀했다. 무협비디오에 실패한 뒤 옛날 생각이 났다. 나 역시 무협소설을 꽤나 보았던 것이다. 주로 중학교 때였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군협지>란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읽은 책 중에는 <정협지> <비룡> <비호> 등이 떠오른다. 10년 전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군협지> 5권을 팔고 있었는데, 옛날 기억이 나 사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른이 되어서 무협소설을 본 것은 김용의 소설이 나오면서부터였다. 하도 신문지상에서 김용, 김용, <영웅문> <영웅문> 하니까, 궁금증이 나서였다. 그 시리즈 중 어떤 것을 읽었는데, 중간에 포복절도할 일이 있었다. 어떤 여주인공의 이름이 공손대낭(公孫大娘)이었는데, 다음 권을 보니 ‘공손 큰 아가씨’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대낭’을 ‘큰 아가씨’로 번역한 것이었다. 아마 책을 찢어 나누어 주고 번역을 시킨 뒤 거두어 모았을 것이다. 역자로 이름을 내 건 사람이 전체적으로 다시 문장을 다듬어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게 귀찮아 팽개친 것이 아닌가 싶다. 공손대낭이라면 두보의 시 ‘관공손대랑제자무검기행(觀公孫大娘弟子舞劍器行)’에 나오는 무녀(舞女)로 꽤나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말이었다. 어쨌거나 ‘공손 큰 아가씨’가 나오고 난 뒤 책을 덮고 말았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이야기를 들자면, 무협소설은 어른의 판타지다. 미남미녀에 자신을 투사하고, 도저히 극복이 불가능할 위기도 우연에 의해서, 예컨대 동굴 속에서 비급을 얻어서 절세의 고수가 됨으로써 해결된다. 신체적 약점도 어떤 약을 먹고 내공이 갑자기 증진되며, 또 칼도 창도 꿰뚫을 수 없는 갑옷을 입고, 또 무엇이든 끊을 수 있는 칼과, 또 언제나 주인공을 돕는 탁월한 능력의 조력자들이 있다. 그를 사랑하는 미인은 항상 여럿이다. 이게 무협소설의 문법이다. 그야말로 판타지가 아닌가. 독자들은 잠시나마 그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 현실의 고달픔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무협소설이라 해서 저급한 것은 없다. 판타지라면 톨킨의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다. 무협이란 제재 속에 결국 무엇을 담아 인간과 사회, 세계에 대한 어떤 통찰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루쉰의 <중국소설사>에 의하면, 무협소설은 청대 의협소설의 후예다. 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마천이 <사기> <유협열전(遊俠列傳)>에서 형상화한 협객들, 곧 형가(荊軻)와 같은 사람과 만나게 된다. 협객은 강한 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 것을 덕목으로 삼되, 무(武) 곧 폭력을 그 방법으로 택한다. 유협은 다른 것이 아니라 깡패다. 의리 있는 깡패, 핍박받는 민중을 위해서 폭력(절제된 폭력)을 쓰는 자다.

무협소설이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여기에 대한 비평서도 있다. <무림백과>(양수중 저, 안동준·김영수 옮김, 서지원, 1993)가 그것인데, 무협소설의 역사, 특히 구무협(舊武俠)과 신무협의 차이, 무림의 문파, 무술, 무기 등에 대해서 소상히 정리해 놓았다. 또 하나는 진주교육대 송희복 교수가 쓴 <무협의 시대>(경성대출판부, 2008)인데 주로 1966~1976년 사이의 무협영화 계보와 영화의 주인공과 배우에 대해 상설한 것이다. 나는 이 두 책으로 무협소설과 무협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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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사회에서 약자를 착취하는 자들, 법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들(아니 법을 넘어 있는 자들), 주로 관료나 토호(土豪) 같은 자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때 민중은 유협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따라서 유협이 횡행하는 세상, 예컨대 <수호지>의 108명의 협객이 영웅으로 대접을 받는 세상은 분명 썩은 사회인 것이다. 아마도 내가 무협비디오를 보고 실망했던 것은, 그런 사회 현실에 대한 통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터이다.

한국의 무협소설은 아마도 <홍길동전>이 최초일 것이다. 물론 도술 운운하는 것이 무술은 아니지만, 무협소설의 무술이란 것도 사실 도술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실례되는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장길산> 같은 것도 무협소설의 기미가 있다. 김홍신의 <인간시장>도 현대판 무협소설로서 썩 괜찮은 작품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아직 읽을 만한, 한번 손에 쥐면 놓을 수가 없는 그런 흥미진진한 한국판 무협소설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세상이 이 모양이면 좋은 무협소설이 나올 만도 한데, 그러지 못하니 이 역시 작가의 가뭄인 셈인가.

사족. 무협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정파건 사파건 할 것 없이 고수가 아닌 졸개들을 죽일 때면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졸개들은 늘 고수가 칼을 한번 휘두르거나 주먹을 휘두르면 그냥 쓰러져 죽곤 했다. 주인공은 언제나 인명의 귀중함, 의리 등을 들먹이고 있는데 정말 웃기는 일이다. 하기야 이렇게 따지고 들면 무협소설과 영화는 아예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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