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혹은 조선시대사에 관심이 있는 독서가에게 둘도 없이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이 만들어진 내력은 알 만한 사람이 다 알기에 굳이 여기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이야말로 한국역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책이라는 점을 강조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임진왜란 때 거의 모든 서적이 잿더미가 되었을 때도 <실록>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동경제국대학으로 1벌을 가져갔는데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6·25전쟁 때는 북한으로 또 1벌이 넘어갔다. 이건 한반도에 남아 있는 것이니, <실록>을 여러 곳에 흩어둔다는 원래의 취지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또 북한과 남한이 각각 번역본을 내었으니, 분단이란 비극이 없었다면, 두 벌의 번역본은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실록>은 펼쳐보면 새까만 한문이다. 원래 엄청나게 큰 책이지만, 아주 축소해서 현재 볼 수 있는 크기로 만들었다. 엄청나게 줄여 한 페이지에 원본 4페이지를 담아 놓았다. 그 빽빽한 한자의 숲을 보고 있으면, 뭔가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이 든다. 뭔가 저 속에는 조선시대의 비밀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읽어보면 그냥 그런 사료다. 뭐, 어마어마한 내용은 없다. 아니, 세상 어디에도 그런 신비한 책은 없다.

<실록>은 조선시대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사료 중의 사료다.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임병양란 이전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 홍문관의 거대한 장서고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고, 그 외 조선 전체의 갖가지 문헌 역시 같은 운명에 처했기 때문에 남은 문헌이 거의 없다. 문집도 얼마 되지 않는다. <고려사>를 엮었던 고려시대의 문헌 역시 모두 사라졌다. 이 때문에 조선전기에 관련된 그 무엇을 알려면 <실록>이 필수적이다. 조선 건국 이후 100년간, 그러니까 태조에서 성종 때까지의 <실록>은 고려시대 사회의 연속이기에 고려 사회를 짐작하는 데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500년 동안의 기록이니 <실록>은 시대에 따라 문체도 내용도 차이가 난다. 임진왜란 이전의 문체는 좀 순박하다고 할까 읽기가 편하다. 하지만 조선후기로 가면 문체가 꽤나 까다로워진다. 내용도 조선전기 <실록>에는 정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풍습, 예술 등 다양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조선후기 <실록>에는 정치, 곧 당쟁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양반사회가 달라진 것을 <실록>의 문체와 내용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실록>은 오직 사고(史庫)에만 있었기에 누구나 볼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 영인본이 한 번 제작되었다. 실물을 본 적이 있는데, 원문 한 면을 한 페이지에 축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제작되었는지, 과연 <실록> 전체를 영인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러니 <실록>을 베끼는 사람도 있었다.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따로 제작한 특별히 큰 원고지에 만년필로 베껴 쓴 <실록>이 50책이 소장되어 있다. 일본인 학자가 베낀 것이다. 옛날 문헌학을 전공하신 류탁일 선생님으로부터 그 일본인 학자의 이름을 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돌아가신 선생님께 여쭈어볼 수도 없고!

<실록>을 학자들이 볼 수 있게 된 것은 1955년부터 1958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본을 찍어내면서부터였다. 원문 그대로 영인한 것이다. 이로 인해 보통의 학자들도 <실록>을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비싼 것이 흠이었지만, 그래도 무리를 하면서까지 구입하였다. 이윽고 한문 원문에 끊어 읽는 점을 찍은 영인본이 나와 읽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이른바 국학을 하는 분들, 한국사, 국문학 등을 연구하는 분들의 연구실에 가면 그야말로 새까만 <조선왕조실록>이 한 질씩 있었다.

교수님이 자리를 비울 적에 슬쩍 꺼내 펼쳐 보고는 나는 그 빽빽한 한문의 숲을 헤쳐나가는 교수님을 정말이지 존경해 마지않았다. 그분들은 그것을 모두 줄줄 읽는 줄 알았다. 하지만 비밀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분들은 드물었다. 그 책들은 대개 장식용이었다. 뭔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보통의 학자들은 그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공부의 길로 접어든 이래 책값이 늘 궁했다. <실록>을 한 질 사고 싶었지만, 가난한 서생에게는 너무나 비싼 것이었다. 구파발의 어떤 고서점에 <실록> 한 질이 단정하게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물어보니, 몇십만원이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도 그 책이 눈에 선하다. 영인본을 다시 영인한 조잡한 형태의 영인본을 팔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값이 눅어 구입할까 했지만, 너무 종이가 나빠서 작은 글씨는 거의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북한에서 번역한 <실록>을 다시 영인해서 파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그 책은 너무나 쉽게 풀어 써서 연구자가 이용하기에는 또 문제가 있었다.

나는 어떤 <실록>도 갖지 못하고 도서관 신세를 져야만 하였다. 박사논문을 쓸 때는 색인을 처음부터 훑어나가며 관계되는 용어를 검색해서 해당 부분의 원문을 복사해 내었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책으로 묶어 하나씩 읽어나갔다. 하지만 이 색인이 불완전한 것이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고 내가 놓치고 있는 자료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떨었다.

학위논문을 쓰고 나서 남한에서 <실록>의 400권의 번역본이 완간되었고 곧 이어 디지털화되었다. 검색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편리해졌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도 번역문과 원문 모두를 제공한다. 누구라도 인터넷에 접속하면 <실록>의 번역문과 원문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실록>뿐인가? <승정원일기>와 <비변사등록>도 <실록>과 함께 읽을 수 있다. 요즘에는 박시백의 만화로 그린 <조선왕조실록>까지 있으니, <실록> 보기가 이래저래 편해진 것이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