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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확한 길이기는 하지만, 쉽고 빠른 길은 아니다.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섬세하고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해야 한다. 그 어렵고 느린 길을 걸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이들은 그 대신 권력을 가지려 한다. 권력을 얻어 명령의 주체가 되면 커뮤니케이션을 생략해도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행기나 호텔에서 여성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 권력자들은 사랑 대신 지배를 선택했고, 그런 의미에서 실패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넓게 보면 교환의 문제이기도 하다.


26세의 카를 마르크스는 훗날 <경제학·철학 수고(手稿)>(1844)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노트에서, 돈이 인간관계를 비틀어놓지 않은 상태를 가정해 보라고, 그때의 교환은 어떨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인간이 인간일 때,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인간적인 것일 때, 그럴 때 당신은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오직 신뢰와만 교환할 수 있다. 당신이 예술을 향유하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예술적인 소양을 쌓은 인간이어야 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어야만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으로 거의 모든 교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청년 마르크스가 가정하는 “인간적인” 세계에서는 다르다. 그곳은 사랑·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신뢰를 줘야 하는 세계다. 대가 없이 무언가를 줄 때 그 무언가와 동등한 대가가 돌아온다. 


그러고 나서 마르크스가 하는 말은 언뜻 당연해 보이는데, 실은 다 교환의 사례들이다. 예술로부터 무언가(즐거움과 깨달음)를 얻기 원한다면, 먼저 무언가(시간과 노력)를 예술 편에 줘야 한다는 것. 또 당신이 “고무”와 “장려”의 방식으로 타인에게 먼저 영향을 주면, 그들은 영향력이라 불리는 그 힘을 당신에게 준다는 것.


이렇게 읽으면, 이어지는 대목의 까다로운 첫 문장이 이해될 수 있고, 심상한 아포리즘처럼 보이는 마지막 문장에도 새삼스러운 울림이 얹힌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당신의 모든 관계는, 당신의 의지의 대상에 상응하는, 당신의 현실적인 개인적 삶의 ‘특정한 표현’이어야 한다. 당신이 사랑을 하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즉 사랑으로서의 당신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당신의 생활표현을 통해서 당신을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력하며 하나의 불행이다.” 


앞서 말한 것이 ‘교환’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것은 ‘관계’다. 교환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관계란 어떤 것이어야 하나. “대상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돈이 아니라 나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는 삶의 “특정한 표현”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다면, 나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어떤 ‘태도’를 줘야 한다는 것. 이것 자체로도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결과도 장담하기 힘들다. 내 사랑은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나의 사랑은, 그것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불행이 되고 마는, 무력한 사랑이다.


(경향DB)


어쩌면 마르크스의 두 문단에 가장 대중적인 주석을 단 사람은 생텍쥐페리일지도 모른다. <어린왕자>(1943)의 여우는 ‘관계’의 사상가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를 ‘길들이는’ 일이라고 여우는 말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는 이 문제를 ‘교환’의 층위에서 바라볼 줄도 안다. “사람들은 이제 시간이 없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었어. 상점에 가서 다 만들어진 물건들을 사는 거야. 하지만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어.” 최근의 뉴스들은 인간적인 교환·관계에 무능한 이들의 권력이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그 자체로 “하나의 불행”임을 알려준다.



신형철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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