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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 | 설치미술가


 

북한의 전쟁 위협이 무색하게 관객들로 꽉 찬 아르코 대극장에서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연극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에 관하여>를 보았다. 국제다원예술페스티벌 ‘봄’은 실험극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의 작품을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다. 내가 처음 접했던 카스텔루치의 은 설치미술 콜라주처럼 보았는데, 이번 작품의 구성은 꽤 단순했다.


아버지가 똥을 싸고 아들이 씻겨주는 데 거의 45분을 할애했으니까. 무대 위로 부축받으며 등장한 늙은 아버지는 앉은 채로 선 채로, 끊임없이 똥을 ‘비워냈다’. ‘미안하다’를 연발하며 울부짖었다. 아들은 하얀 소파에서 의자로, 의자에서 하얀 침대로, 끊임없이 배설하는 아버지를 괜찮다고 달래며 정성스레 기저귀를 갈고 몸을 씻겨주며 바닥을 닦았다. 아버지의 침대와 기저귀는 “우리는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금언을 환기했다.


나는 여기서 이 작품의 리뷰를 쓸 생각은 없다. 대신 이 작품 소개로 시작한 이유는 무대 정 중앙 벽면에 기념비적으로 걸려있던 예수의 초상화가 내게 던진 질문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 예수 초상이 만들어낸 쌍방향 외면의 실체 때문이다. 카스텔루치는 예수의 초상화의 배경을 “관객이 무대를 바라보는 응시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예수로부터 응시를 당하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공연의 마지막 15분 동안 아이들이 나타나 예수의 초상에 수류탄을 던지고 눈에서는 오물이 튀어나와 흐르며, 얼굴이 난도질당하는 장면이 벌어진다. 종국의 파괴된 얼굴에는 조명장치로 만든 문장, “주는 나의 목자이시니”를 뜻하는 영문이 ‘Not, 아니기도 하시니’와 함께 간격을 두고 나타난다.


카스텔루치는 르몽드지를 통해 아버지의 배설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면서 예수께서 사람의 형체로 태어남을 뜻하는 비움, 신성 포기(Kenosis)를 언급한 적이 있다. 나는 레비나스의 철학을 연극적 장치로 풀어내려 했던 게 아닐까 짐작했다. 레비나스는 신의 신성 포기를 비천함과 낮춤이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전환하고 타자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은 상호성으로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광판에 쓰인‘You Are Not My Shepherd’를 읽으며 공연을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의식되던 그 시선의 실체가 사실은 비어있기 때문에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히려 예수가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온 까닭이 될 수 있는 ‘눈뜬’ 외면을 보았다. 시선은 환상이었고 외면에 가까웠다.


하루가 멀다고 불바다 위협을 듣고 있는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자발적 속수무책, 무늬만 평화다. ‘외면의 공동체’란 말이 갑자기 떠올랐던 이유다. 무늬는 공동체인데 서로 무시하는 공동체. 적대와 위협을 일삼으며 서로의 고통을 외면하고 신 앞에서 파괴와 죽음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 모른 척해야 쿨해 보이고 외면해야 이기는 새로운 세태의 부상과 함께 구원과 외면은 동전의 양면이 된 것이다. 


이런저런 잡념 때문에 ‘외면’이 내면을 뒤집는다. 겨우 할 수 있는 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모른 척하는 게 전부다. 그래도 곰곰이 북한의 의도를 이해해 보려고 한다. 시뮬레이션으로 자존감을 승부하는 양치기 소년은 아버지의 부재 때문에 그랬나. 그래서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이 아니라 선택된 자를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에 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도 외면 때문에 깨지고 공동체를 부정하는 단초도 외면에서 시작되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순안공항에서 환송나온 김정일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경향DB)


철부지 딸아이는 전쟁 나면 비행기 타고 프랑스를 가면 된단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얼굴들은 어디에 남겨 두고서….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본분의 부름에 응하는 방식을 보면 외면의 공동체는 어디선가 만난다. 마주하기를 꺼리는 것을 뜻하는 외면의 피난처를 알고 싶다. 역설적 희망인지 독설인지 그런 질문과 회의에 빠져 있다. 어쨌건 딸에게 말해줄 거다. 엄마는 한국에 남아있을 거라고. 눈감으면 떠오르는 기억들은 여기에 있으니까, 사람을 그리워할 줄 안다면 눈감고 모른 척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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