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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천 | 홍익대 BK연구교수·디자인 연구자



150만가구를 넘어섰다는 하우스푸어 구제책을 놓고 찬반 양론이 뜨겁다. 반대 입장은 사회 전반에 걸쳐 빈곤층 문제가 심각한데 왜 ‘하우스푸어’만 특별 대접을 받느냐고 반문하며, 투기적 성격이 강한 개인의 투자 실패에 정부가 나서는 것 자체가 시장의 규칙에 어긋나는 처사라고 지적한다. 반면 찬성 입장은 하우스푸어에 대한 대출 상환 압박이 임계치를 넘어서면 다량의 매도 물량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와 가격 폭락을 부채질할 것이고, 이런 양상이 반복되면 결국에는 내수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근심한다.


양자 모두 아파트 시장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공유하지만, 전자의 입장은 이런 상황의 전개를 가격 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이행의 관문으로 바라보는 반면, 후자의 입장은 저성장의 악순환 회로로 진입하는 지름길로 파악하는 것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측의 입장은 나름의 설득력을 지닌 듯 보이지만, 한 가지 의문을 남긴다. 양자 모두 아파트의 사회경제적 기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파트에 대한 인식은 두 갈래이다. 하나는 전체 주택의 6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지배적인 주거 모델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입지 조건만 맞아떨어지면 사용할수록 몸값이 올라가는 놀라운 재테크용 중고 상품이라는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아파트가 특정 기간 동안 주거 공간과 중고 상품,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이중적 특성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약을 위한 디딤돌 구실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한 시민이 부동산 중개업소에 내걸린 시세표를 살펴보고 있다. (출처: 경향DB)


약간 도식화하자면 1970년대의 강남, 1980년대의 목동, 상계·중계, 과천, 1990년대의 수도권 신도시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고, 그 아파트들은 당시 막 내 집 마련에 나섰던 4·19세대, 유신세대, 386세대 중 일부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들 대다수는 1980년대의 서울에선 130만원대 이하 평당 분양가로, 1990년대 초반의 수도권에선 200만원대 초반의 평당 분양가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중동 건설붐에 힘입어 사막에서 벌어온 달러로 아파트를 장만했고, 누군가는 오랜 직장 생활 끝에 재형저축으로 목돈을 마련해 샀고, 누군가는 부모님이 매입한 재개발 딱지로 구입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입주 후 ‘근로소득자’로서의 정체성을 청산하고, 아파트 시세 상승이 가져다준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중산층 소비자’의 일상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단지 주변의 교회, 쇼핑시설, 학원 등이 입주 첫 세대의 생애주기에 맞춰 세를 확장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분양가상한제 시대의 아파트는 예비 중산층과 중산층 위주로 부를 분배하는 사회 시스템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상 복지제도를 대신했던 이 시스템의 에너지원은 연간 10%를 넘나드는 경제성장률이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외환위기 이후였다. 경제는 갈팡질팡했고 분양가상한제는 폐지됐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지난 20년 동안 아파트를 통해 학습해 온 ‘자산소득을 향한 욕망’이었다. 하우스푸어 양산의 출발점이 됐던 2003년 이후 아파트 가격 폭등은 이 욕망이 은행 대출을 에너지 삼아 제 부피를 팽창시킨 결과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우스푸어는 고도성장 시대가 남긴 부작용일 뿐만 아니라 곧 대면하게 될지 모를 ‘어떤’ 미래에 대한 잔혹극 버전의 예고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그와는 다른 미래에 당도하고자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저성장 시대에 걸맞게 주거와 일상, 욕망을 다시 설계해야만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이런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다룰 만한 역량이 있는 것일까? 혹시 그 역량의 부재 때문에, 대선 후보들이 거품경제의 유령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나서겠다며 ‘창조’와 ‘혁신’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많은 이들이 아침마다 신문을 펼쳐보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끼는 건 아마 이런 의구심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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