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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암이시라고?”

교무실에 조퇴증을 끊으러 온 민주의 말에 담임인 영희는 깜짝 놀랐다. 근래에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병명이었다.

“정말 암이라니? 어쩌다가……. 어머니 검진칩도 안 심으셨니? 목 뒤에 말이야. 아무 내과나 가면 심어주는데.”

영희는 목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단백질로 만든 나노미터 단위의 칩이라 만져지지는 않았지만.

민주 집이 그렇게 가난했던가, 영희는 잠깐 고민했다. 검진칩 시술은 싼 편이지만 그 돈도 없는 집은 없으니까. 칩 시술은 무상제공이어야 한다는 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지만 요새 국회가 싸우느라 바빠 아직 계류 중이다.

“엄마가 그거 심으면 보험 비용이 오른다고…….”

영희는 입을 딱 벌렸다.

“아니, 무슨 보험 무섭다고 거기에 목숨을 걸어.”

“해킹으로 개인정보 빼내서 못된 짓 하는 사람들도 있대요.”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검진칩이 보급되면서 ‘이대로 가면 의료업계는 망한다’고 믿은 의료계와 제약업체의 언론플레이가 한때 대단했다. 보험회사가 칩에 기록된 모든 초기 질병에 추가금을 매긴다는 설에서부터, 해킹으로 개인정보를 빼가는 범죄가 있다든가, 칩에 전파를 전송해 몸을 조종할 수 있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하면 꼭 칩이 필요하겠나.

“다 거짓말이야. 집안 어른 누구한테든 말씀드려서 가족이 모두 검진칩 심어야 한다고 말씀드려. 알겠니? 그리고 요새는 약도 시술도 다 좋아졌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

성긴 구조의 암세포 혈관에만 들어갈 수 있는 나노입자 치료법이 올해 도입되었다. 몸 전체에 폭격을 가했던 기존의 항암제와는 달리 부작용 없이 암세포만 골라 없앨 수 있는 치료법이다.

“예방이 최선의 치료야.”

2025년, 의학의 최대 난제 중 하나였던 암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치료법이 아니라 검진기술로 사라지고 있다. 2년에 한 번 하던 건강검진제도도 작년에 중단되었다. 검진칩이 이제 2년이 아니라 초 단위로 몸을 검진하기 때문이다. 건강염려증이 유행하는 부작용이 좀 있을 뿐, 암처럼 초기진단으로 잡아낼 수 있는 병은 기존 환자를 제외하면 사라지다시피 했다.

칩을 심지 않아도 동네 보건소나 마을회관에 비치된 혈액분석기에 피 한 방울만 넣으면 웬만한 질병을 간단히 검진할 수 있다. 이제 노인들은 노인정에서 수다를 떨면서, 학생들은 학교 양호실에서, 직장인들은 휴게실에서 심심풀이 삼아 건강검진을 한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벌써부터 인류가 불사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설레발이 요란스럽다. 물론 기본적인 노화와 불의의 사고, 알려지지 않은 병과 바이러스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요즘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수명연장이 아니라 존엄한 죽음의 문제다. 벌써 세계 국가의 4분의 1은 안락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국내에도 법안이 발의되었다. 노인의 재사회화 문제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사람이 150~200년을 살게 되었는데, 10년만 넘겨도 쫓아갈 수 없는 시대에 100년 전에 받은 교육을 어디에 써먹겠는가? 최근 학계에서는 의무교육이 어린 시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50년에 한번씩 새로 학교에 들어가 의무교육을 받는 제도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면 좋겠어. 학교가 두 배로 늘고, 선생이 두 배로 필요하면 나한테도 좋은 일일 테니까.’

생각난 김에 영희는 스마트폰을 켜 몸을 점검했다. 저번 달에는 가슴에 난 좁쌀만 한 종양을 처리했고, 간과 대장 기능 강화를 위한 주사도 맞았다. 검진목록은 오십 개쯤 되었다. 상태 바가 주황색이 된 것을 집어내다보니 다섯 개쯤 된다. 빨간색으로 넘어가기 전에 다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던데…….

꼭 게임 스테이터스 창 같아. 영희는 화면을 보며 생각했다.

어째 옛날보다 병원을 더 다니는 것 같아. 영희는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예전에는 그냥 주말에 잘 먹고 쉬면서 해결했던 것 같은데.

뭐, 그래도 건강이 제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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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쓸 때 가능한 한 우리가 아는 세계에서 하나 이상을 바꿔 넣지 않는 편이다. 하나만 바꿔도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이다. 변수가 둘 이상이 되면 그 교집합을 다 따지기 어려워진다. 물론 별 생각 없이 대충 멋대로 세상을 만들 때도 있지만.

예전에는 미래예측 가능성을 9, 예측 불가능성을 1로 보았다면, 이제는 거꾸로 예측 가능성을 1, 불가능성을 9로 본다고 한다. 미래가 어디로 튈지 학자도 모르고 소설가도 모른다. 어떻게 변할지는 장담할 수 없고 단지 변하리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은 유연한 대처요, 이에 필요한 것은 유연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이에 필요한 것은 또한 유연한 교육일 것이다.

위 에피소드에서는 몸에 심는 검진칩이 대중화된 후 사회가 적당히 그에 대처한 시대를 그렸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수명 연장의 유토피아는 얼마든지 디스토피아로 바뀔 수 있다. 검진칩이 대중에 무상제공되는 대신 비싸게 팔린다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평균수명 차이가 급격히 벌어질 수 있다. 평균수명이 늘었는데 교육, 결혼, 직업 환경과 제도가 지금과 그대로라면, 사회는 50줄 이후 직장도 수입도 없고 재사회화도 못한 채 더 백년쯤 세상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수백만의 불행하고 화난 노인들을 안고 가야 할 것이다. 그들을 부양하느라 불행하고 화난 젊은이들과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부모는 덤으로. 이미 우리는 실제로 그 디스토피아 언저리에 있다.

세상은 이제 백년, 십년 단위가 아니라 수년 단위로 변한다. 많은 학자들이 이 나라가 몇 년 안에 혁명적인 변화를 하지 않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김보영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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