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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미래의 과거다

opinionX 2016. 1. 7. 21:00

2034년을 주목하자.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작 18년 남았다. 두려운 마음으로 그 시간을 성찰해야 할 때다. 지금 상태가 지속되면 2034년 이후에는 국가채무를 갚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한 말이다. 대안은 증세란다. 그런데 지난 정부와 현 정부 모두 증세에 반대하기에 대놓고 말하지 못한다. 다른 기관도 아닌 국가기관이 이렇게 진단하는 건 예사롭지 않다. 심하게 말하면 그건 모라토리엄의 징후가 아닌가. 그런데도 지금 우리에게 그 시간은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언론에서도 의도적이건 아니건 크게 보도하지 않는다. 바보 나라다, 이건.

스물네 살 청춘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한다.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단순한 충격이 아니다. 미래 노동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돌아갈지 보여주는 가늠자다. 엄연히 흑자를 내는 회사다. 무리한 기업 인수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 부담 때문에 고용비용을 줄이겠다며 내린 결정이다.

정작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룹 이름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자회사에서 엄청난 이름 사용료는 꼬박꼬박 받아 챙긴다. 참으로 희한하고 쉽게 돈을 번다. 당연히 그 행태를 비판해야 하는데 그런 건 쏙 빠진다. 이러니 부패한 엘리트 카르텔 사회라는 말을 듣는다. 외환위기 때에도 고위관료나 기업 최고경영자는 책임지지 않고 서민들이 그 짐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그러니 관성이 생기기도 했을 것이다. 엉뚱하게도 오히려 스물네 살 청춘도 퇴직해야 하는 위기상황을 강조하며 어설픈 중장년들에게 자리를 내놓으라 윽박지른다. 갈수록 더할 것이다. 그걸 아예 법으로 보장하는 것을 노동개혁이라는 억지 논리로 내세운다. 지금도 시린데 앞으로 혹한이 닥칠 건 뻔하다.

얼마 전 발표된 미국과 한국의 상위소득자 분포 조사 결과를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은 70% 이상이 자기창업자인 데 비해 한국은 80% 이상이 가업 승계자다. 창업자는 과거에 미련 없다. 미래를 바라보며 나아간다. 미래가치를 추구하고 도전한다. 거기에서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고 발전적 미래가 생긴다.

그러나 가업 승계자는 기존의 체제에서 여전히 이익이 담보되는 까닭에 그런 도전에 옹색하다. 미래 투자를 하려면 새로운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하고 직원도 재교육시켜야 하는데 시장은 불확실하다. 그러니 당장 이익을 낼 수 있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한다. 거기에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면 5%쯤의 이익이 더 생긴다. 해고를 마음대로 하고 비정규직을 늘린다. 이런 조건이면 앞으로 10년 동안 남은 단물 더 빨 수 있다. 그리고 끝이다. 그 뒤에는 몰락의 가속도만 남게 된다. 그걸 두려워해야 한다.

두산인프라코어 2015년 '희망퇴직' 규모. 일반 퇴직자를 더하면 1700여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_경향DB


그런데도 그 질주에 가속기를 달아주겠다는 게 정부의 선택이다. 앞으로 10년이 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10년 이후는 재앙이 된다. 지금의 선택이 그래서 중요하다.

20세기는 오로지 속도와 효율의 시대였다. 전반부는 전 세계가 전쟁에 몰두했으니 그랬고 후반부는 산업화 과정을 따르면서 저절로 그랬다. 그래서 교육도 철저하게 속도와 효율만 추구했다. 산업화의 모범생인 대한민국은 그렇게 20세기에 성장했다. 20세기 후반 속도와 효율의 한계를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것은 단순히 외환 관리의 미흡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시스템 전체가 무너진 것이다. 그걸 제대로 성찰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속도와 효율에만 함몰되어 있다.

21세기는 창조, 혁신, 융합의 시대다. ‘자유로운 개인’과 무한한 상상력이 그 뿌리고 바탕이다. 그러려면 온전한 민주주의와 자유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은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자유가 억압되는 퇴행의 시대다. 공정해야 할 저울은 완전히 망가졌다. 이건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하드웨어는 돈만 어느 정도 있으면 갖출 수 있다. 게다가 눈에 확 뜨이니 매력적이다. 건물은 후딱 짓는다. 소프트웨어는 마인드와 지식이 있으면 개발할 수 있다. 그마저도 없으면 프로그램 자체를 통째로 사다 장착하면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두 가지에만 몰두했다. 이전까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효율적인 결합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끌었다. 이젠 과거의 일이다. 미래의 진정한 성과는 휴먼웨어에서 나온다. 그런데 휴먼웨어의 성과를 얻으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그 결실을 얻는 건 훨씬 나중이다. 그러니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라고, 아무도 사람에 대해 투자하지 않는다.

무조건 기업에 유리한 혜택을 쏟아붓는다고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나는 게 아니다. 그건 약이 아니라 독이다. 기득의 이익을 고수하고 미래 성찰과 투자를 꺼리게 할 뿐이다.

지금 기업들은 최대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커녕 오히려 고정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고용 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사람에게 투자하지 않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투자가 우리의 미래다.

작년 가을 중국에서 강연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상사 주재원의 근무기간이 1년에서 1년 반으로 주는 곳이 늘고 있단다. 3년이면 가족이 따라가니 큰 집 구해줘야 하고 교육비도 지원해야 한다. 기간이 줄면 혼자 가게 되어 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면서 중국 시장이 중요하니 보다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럴 거면 장기연수를 보내면 된다. 회사는 긴축압박경영을 표방하며 불용예산을 줄이라고 채근한다. 고작 이런 인건비 감소로 대응한다. 인건비 줄이는 것 말고는 해본 게 없다. 회장의 지시를 잘 따르고 지출이 줄어드니 당기순이익은 일시적으로 는다. 그러면 자기 말 잘 들었다고 그런 결정을 내린 책임자를 승진시킨다. 그런 기업이 미래를 어찌 감당할까.

2034년을 주목해야 한다. 현재는 미래의 과거다. 미래를 보면 현재가 보인다. 그런데도 눈앞의 이익만 탐닉한다. 휴먼웨어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산다. 권력과 재력의 기만적 야합과 유착을 도려내야 한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필수다. 안 그러면 곧 우리 모두 죽는다. 새해, 정신 바짝 차려야 산다.


김경집 |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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