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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산책자]친구와 고양이

opinionX 2017. 6. 12. 10:31

내가 다닌 소도시 고등학교엔 시골에서 유학 와 하숙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 한 친구의 시골집에 놀러 가 며칠 유숙한 적이 있다. 아직도 나는 그때의 친구 집을 떠올리면 변소가 생각난다. 청동기 시대 옹관묘보다 큰 거대한 항아리, 그게 변소였다. 항아리 위에 널빤지가 놓여 있었고 그 밑엔 똥이 그득했다. 햇볕이 들어 내용물도 잘 보였다. 정말 레전드급의 항아리였다. 친구는 뒷산에 올라 토끼 올무도 보여주었다. 토끼가 지나다니는 길엔 풀이 누워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친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아늑하고 그림 같은 마을이었다.

이 친구가 ‘100년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대학 때 연락이 끊어졌으니 실로 오랜만이다. “야 반갑다, 니 어디 있노” 하니 경주에 산다고 한다. 이런저런 안부 끝에 자기는 요즘 고등어 낚시를 다닌다고 했다. 포항 칠포 바다에 큰 방파제가 생겨 봄가을로 많이들 잡아가니 한번 내려오라고 친구는 말했다. 그 뒤로 친구는 고등어 사진을 문자로 보내며 틈만 나면 나를 유혹했다. 몇 달 뒤 친구는 시골집으로 이사를 와버렸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낙향한 거냐니까 그렇단다. “내가 있다 아이가, 사업하다 사기당하고 십몇년 꿀었다 아이가. 유배한 거지. 이제 지겹다. 시골집엔 여든일곱의 노모가 홀로 계셨다. 이제 엄마 모시고 살겠다”는 게 친구의 설명이었다.

그 뒤론 심심찮게 전화가 왔다. 깡! 친구는 나를 이렇게 부른다. 어제 아침 대문 앞에 갓 태어난 새끼고양이 다섯 마리가 꼬물거리고 있는데, 어미는 보이지 않고 골치가 아프단다. 급히 슈퍼 가서 우유를 사와서 먹였는데 순식간에 세 마리가 죽어버렸다. 인터넷을 뒤져 방법을 찾았다. 다행히 서랍에서 찾은 플라스틱 주사기에 우유를 넣어 물리니 쪽쪽 잘 빨아 먹더란다. 두 마리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깡, 사진 보냈으니 봐봐라!” 목소리 톤이 높다. 볼펜보다 작은 너무나 예쁜 새끼고양이였다.

냥이 형제의 성장기를 생중계로 듣던 어느 날 통화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할마시가 병원에 갔다는 것이다. 며칠 상간으로 숟가락을 딱 놓고 밥을 일절 끊더니 몸져눕더라는 것이다. 우야노, 입원하셨나 물으니 그렇단다. 입원시키는데 간호사가 손이 거칠다고 간호사 욕을 또 들입다 한다. 다음날 문자가 왔다. 모친께서 돌아가셨다. 친구는 소주에 잔뜩 취해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가관이다. “아부지 때는 몰랐는데 엄마는 용기가 안 난다. 우리 엄마가 고생을 참 많이 하셨거든, 내가 이렇게는 못 보내겠다.” 가족들한테 어서 가보라고 해도 친구는 계속 넋두리다. “그래 내가 참 이상타 캤다. 마당에 쪼르륵 있는 화분에 매년 고구마를 그렇게 심어 쌓더니 올해는 딱 안 심는 거라. 매년 오던 이모도 올해는 오지 말라 캐서 할마시가 와 이리 못돼 졌노 했다 아이가. 노인네가 이불을 다 꺼내서 빨질 않나 집 청소를 깨끗하게 하는 기라.”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친구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 먼 길 떠나는 어머니의 준비를. 자기는 그냥 불안하게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고.

장례 후 며칠 잠잠하기에 이번엔 내가 전화를 걸었다. 며칠 만에 첫 끼니를 회사 와서 먹었단다. “니는 실력도 좋네. 취직도 금방 하고” 했더니 아는 형님 파이프 공장이란다. 엄마 생각나서 죽겠다고 했더니 와서 파이프라도 줄로 묶으라고 했단다. “그래, 잘됐네. 부지런히 묶어라. 몸을 고되게 하는 게 장땡이다.”

오늘 친구가 또 사진을 보내왔다. 길고양이가 얼쩡대기에 밥을 줬더니 아예 눌러앉았는데 마침 그 고양이가 젖이 나와 냥이 형제가 횡재 맞았다는 내용이다. 사진을 보니 두 마리가 나란히 엎드려 열심히 빨고 있다. 기분이 좋아 “니 그카다가 나중에 고양이 백 마리쯤 키우겠다” 했더니 낮잠 자는지 답도 없다.

참, 기분이 묘하다. 만약 고양이마저 없었다면 더 무섭고 더 아팠을 텐데 마침 저 고양이가 친구를 살리는구나. 짐승은 태어나 처음 만난 이를 엄마로 여긴다는데 그렇게 따지면 친구가 고양이 엄마인 셈이다. 그래, 엄마는 강해야지. “내가 뭐 농사를 지어봤나, 시내에 직장 잡았으니 통근하면서 집에서 계속 살아야지 우야겠노.” 그 말을 듣는데 그 집에 다시 한 번 가고 싶어졌다. 친구에게 집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마루도 찍고, 마당도 찍고, 집 전체가 나오게 찍어서 사진을 받아보았다. 친구는 동구 밖까지 나가서 집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그 사진 속 마당의 화분이 텅 비어 있다. 그걸 보는데 내 안에서 예전의 그 똥항아리처럼 뭔가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가서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오자. 고등어도 잡아 오면 금상첨화다. 한 열 마리쯤 잡아 소금 팍팍 쳐서 가져와야지, 바람에 잘 말려야지.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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