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먹거나 부르거나.’ 텔레비전을 틀면 딱 저 두 개다. 연예인들이 나와 무언가를 먹거나 노래를 부르거나다. 아예 요리사들이 복면을 뒤집어쓰고 노래까지 하니 예능의 융합시대다. 스타셰프 현상, 정확히 말하자면 ‘남성스타 셰프현상’에 대한 다양한 진단은 넘친다. 주로 음식의 영역이 젠더 편향이 강해 여성을 소비주체로 보고 콘텐츠를 짜기 때문에 남성 셰프들이 주로 활약을 한다. 강의에 가서 “여성 셰프 이름 좀 대어 보세요”라고 하면, 중년 여성들도 남성 요리사의 이름은 줄줄 꿰지만 여성 요리사는 한복선씨나 액젓으로 유명한 하선정씨를 대답한다.

이제 스타 셰프들은 소속사와 계약해서 전문적인 매니지먼트까지 받는다. 유명 셰프들이 유명 연예인 소속사와 계약을 맺으면 연예면 기사에 실리는 세상이다. 방송에서는 셰프들의 요리가 넘쳐나고 입맛을 다시지만 그 음식을 먹어보려면 내가 연예인이 되든가 그 레스토랑엘 가는 방법뿐이다.

그런데 셰프의 요리를 손쉽게 만나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홈쇼핑이다. 광고가 길어지면 리모컨으로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는 ‘재핑타임(Zapping Time)’에 시청자이면서 잠재적 ‘고객님’의 마음을 낚아채야 하는 홈쇼핑은 그 자체가 예능 요소가 강하다. 아예 인기 푸드쇼 <냉장고를 부탁해>의 방식 그대로 유명 셰프 두 명이 나와 요리를 한다. 자신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의 스테이크 소스 그대로 담았다며 멋들어지게 접시에 담는다. 소금을 높게 뿌리는 시청자 서비스는 덤. 이어지는 ‘매진임박’ 자막과 ‘완판신화’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면서 쇼는 끝난다. 홈쇼핑은 상품을 직접 만지고 맛볼 수 없다는 점에서 쇼핑호스트의 설명과 이미지에 의존한다. 그래서 빠른 이미지 주입을 하려면 유명인 마케팅이 가장 효율적이다. 식품은 솜씨 좋기로 소문난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걸고 간장게장이나 김치, 장아찌 등속이더니 이제는 레스토랑 경영과 푸드쇼 패널들인 셰프들이 홈쇼핑에 등장해 ‘론칭쇼’를 한다. 7개 채널인 홈쇼핑에 유명 셰프들이 진출하면서 4만원에 가깝지만 느낌은 3만원 같은 3만9900원의 공고한 가격 철벽도 무너졌다. 이제 9만원에 가깝지만 8만원 같은 8만9900원의 시대다. 그리고 은근히 이미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예약은 일 년 치 밀려 있으니 싸고 간단하게 여기에서 사먹으라고, 어차피 똑같은 맛인데 가성비 좋다는 멘트는 팬들을 위한 배려일까.

어쩐지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만들어져서 올 것 같은 이 음식들은 결국 큰 공장에서 만들어져서 온다. 실제로 모 유명 셰프의 스테이크 제조업체는 패밀리레스토랑과 여러 홈쇼핑 채널에 육가공품 납품을 하고 있는 육가공 제조업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맛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내가 굽는 이 스테이크가, 내가 튀기는 칠리 새우가 진짜 그 맛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레스토랑처럼 고급 식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나이프도 없으니 과일칼로 썰어먹어야 하나. 만만한 식용 가위가 눈에 들어온다. ‘미디엄 레어’의 취향도 부족한 내 요리실력과 성능 떨어지는 조리도구 앞에서 멈춘다.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허상 반, 고기 반을 먹어서 그런가. 하나 3개월 무이자이긴 해도 8만9900원이면 CU백종원 김밥 50줄 값이다. 그나마 취준생 청년들은 ‘집밥백선생’을 보면서 1700원짜리 CU백종원 김밥이나 씹고 사는 세상인데 말이다.

우리가 돈만 없나? 다 없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