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시민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세상.’ 이런 세상은 우리에겐 미래이지만 호주를 비롯한 다수의 정신건강 선진국에서는 이미 현실이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정신질환자와 관련한 예산 집행을 어떠한 부분에 집중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솎아내어 격리하고 관리하는 데 돈을 써왔고, 그들은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복지시설을 확충하고, 일을 통해 사회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투자해왔다. 드디어 5월 말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정신건강복지법’은 우리나라도 이제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와 정신질환자로부터의 사회보호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방향 전환이 성공하려면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비이성적 존재=예측 불가=통제 불가=범죄=격리’로 이어지는 대중의 오해를 바로잡지 않으면 정신질환자의 인권과 사회의 안전 확보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지난한 길이 될 것이다.

정신질환자는 정말 위험한가? ‘위험의 현상화’를 범죄라고 본다면 대검찰청이 2011년에 내놓은 ‘범죄분석보고서’에 그 해답이 들어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비정신장애인과 비교했을 때 10%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인가?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범행’과 같은 기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신질환과 범죄를 연결지어 생각할 때는 3가지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사이코패스처럼 반사회성 성격(인격)장애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인데, 흉악범이 체포되었을 때 범죄심리학자들에 의해 추정 진단되고 대중에게 알려진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정신질환이 아니다. 그 개인이 갖고 있는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 성향이다. 둘째,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는 사람이 저지른 범죄라고 해서 그 원인이 모두 정신질환에 있다고 봐서는 안된다. 조현병을 앓는 사람이 가족과의 갈등이 심해서 다투다가 가족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무조건 정신질환으로 인한, 정신질환자이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인가? 그렇지 않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는 정신질환이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정신질환이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우주인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한다’는 망상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정신질환이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세 번째 상황을 예방하고 위험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된다. 정신질환은 본인이나 가족에 의해 조기에 치료체계로 연계되는 것이 중요한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위험한 사람’ ‘정신병원에 격리되어야 할 사람’으로 분류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자신을 감추기에 급급해진다. 그리고 사회적 고립은 위험을 잉태한다.

아울러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등 주요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위험을 예방하고, 사회적 안전을 담보하는 지름길이다. 정신장애인을 위한 주거서비스가 확대되어 정신질환이 있어도 가족이 그 힘겨움을 오롯이 감당하지 않아도 되면, 주거지 가까운 곳에 정신재활시설이 있어서 재활과 회복의 기회를 갖는다면, 정신질환이 있어도 직업을 가지고 일을 통해 자신의 평범한 꿈을 실현해갈 수 있다면 위험은 통제되고 정신장애인의 인권은 증진될 것이다. ‘정신보건법’에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재우 사회복귀시설협회 정책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