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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0.79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비혼, 비출산을 결심하는 청년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언론을 통해 계속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청년 여성들의 결정이 이기적이라는 비난도 종종 들린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 여성들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서 결혼 시장에서 밀려난 청년 남성들의 분노를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유포되는 일도 있었다. 미디어에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을 행복하게 보여주는 것은 나쁜 프로그램이고 미성년자 시기부터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게 된 어머니를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발언까지 나왔다.

우리 미디어가 가족을 매우 중요하게 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말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혈연 중심의 대가족이 등장하고, 아이를 갖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다. 극적 구조를 가진 드라마 외에 결혼 생활이나 육아 현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최근 10년 이상 꾸준히 인기를 끌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미디어 재현에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중반까지도 미디어 속의 성차별 모니터링 지표 중에는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묘사한다’라는 항목이 있었다. 부부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이를 여성의 책임으로 몰아 며느리에게 이혼을 강요하는 시부모의 모습이 그려지는 드라마,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남아 선호 사상을 강조하는 드라마 등이 이 기준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 지표는 2019년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우리 사회가 점차로 가족 다양성에 열리고 있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늘었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출산하지 않는 여성을 비난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 진단에서였다.

이 지표를 미디어 재현뿐 아니라 정부 정책을 바라보는 도구로 다시 꺼내 들어야 할 상황이 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한다는 현 정부의 계획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는 과거의 시각을 반복하고 있다.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안에서는 ‘여성 폭력’이라는 말조차 빼 버려서 비판을 받고 있다. 여성 폭력, 젠더 기반 폭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삶, 특히 여성 노동자의 일상을 위협하여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막는 구조적 성차별이기 때문이다. 여성을 오로지 가정에 제한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역할로만 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도 정책 계획에서 삭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출산과 육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그 맥락을 불문하고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말 역시 이렇게 여성과 출산을 연결하면서 여성의 역할을 출산의 도구로 한정하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미성년자가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기에,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복지 체계를 갖추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의 최근 에피소드들은 윤리적 문제가 있는 미성년자와 성인 간의 관계에서 혼전임신을 한 미성년자 여성을 자극적으로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고, 출연자에 대한 배려 역시 부족하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이 저출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미디어 시청자를 무비판적인 수동적 소비자로 보는 시각이자 주권자인 여성의 권리와 선택을 무시하는 생각에 기반한다. 저출생 문제는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여성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마련되지 않아서이며, 여성의 재생산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제시된 바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성이 제시된 상황에서도 이 문제가 여성의 탓이라는 인식을 놓지 못한 결과가 바로 0.79라는 숫자일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연재 | 미디어 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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