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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화가의 얼굴이 서로 매치되지 않으면, 간혹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렇다. 헐렁한 장옷에 고양이를 안고 찍은 그의 사진을 처음 본 순간, 장난기 많고 다소 거친 듯한 그의 모습이 의외였다. 과연 그가 이 나른하고 몽환적인 그림을 그린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키스>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클림트의 풍경화 중에는 1912년에 그린 <장미정원>이 있다. 그가 1912년부터 거주하던 오스트리아 빈의 주택에 딸린 장미정원을 그린 작품인데, 현재 ‘클림트 빌라’라고 불리는 곳이다. 최근에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유럽의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장미정원>은 과일나무 아래로 붉은 장미들과 꽃들이 만개해 있는 이 빌라 정원을 그린 작품이다. 초록의 배경에 화려한 색의 조각들이 화면을 가득 채워, 싱그럽고 화려하다.

그는 191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6년을 이 장미정원에서 보내며 5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클림트는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여, 매년 새로운 식물을 정원에 손수 심었다. 방문객들이 오면 자신의 작품소개는 뒷전이고, 정원 투어를 하며 각양각색의 장미정원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곤 했는데, 에곤 실레도 그중 한 명이었다.

6500㎡가 넘는 규모의 정원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한때 창고로도 이용되며 훼손되었다가, 지금은 여러 품종의 장미를 심고 새롭게 단장했다. 그중 다마스크 장미는 클림트가 생전에 좋아하여, ‘클림트 장미’로까지 불렸다. 이 장미 품종은 클림트 빌라에 심어졌던 것인데, 폐허가 되었던 정원 한쪽에 다행히 남아 있었다. 눈 밝은 원예전문가가 원래 있던 장미 두 그루에서 어린싹을 채취해 야생 장미에 접붙여 다시 살려낸 것이라 한다. 연한 분홍빛의 다마스크 장미는 꽃잎이 겹겹이 쌓여 풍성하고 볼륨감 있는 장미다.

그리스의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만들고, 로마의 여신 비너스에게 바친 꽃이 장미였으니, 장미가 꽃의 여왕인 것은 당연지사. 평생 많은 여인을 사랑했고 장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구스타프 클림트.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아프로디테와 비너스의 화신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여성과 붉은 장미는 그의 열정적인 인생을 견인한 동력이었다. 

장미는 아름다움과 사랑뿐 아니라 ‘비밀(under the rose)’과 ‘침묵’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가 말년에 가꾼 장미정원에는 ‘사랑의 비밀’을 간직한 ‘침묵의 장미’가 아직도 자라고 있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연재 | 이선의 인물과 식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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