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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의 출산기피 현상에 대한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의 ‘망언’이 논란이 됐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내가 행복하고 내가 잘사는 것이 중요해서 애를 낳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청년들은 행복한가? “청년들이 가치관부터 바꿔야 한다”는 그는 불안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기 어렵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사실 그는 복지예산을 통합해서 아이를 낳은 가정에 “5000만원, 1억원을 지원”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다. 이달 초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출산주도성장”을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모델의 대안으로 제안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통합적 지원을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청년들의 가치관을 문제 삼으니, 그 지원책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취업률, 실업률 문제가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가져와도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이유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9월6일 (출처:경향신문DB)

출산율 급락에 대한 우려는 깊어도, 출산이 단순한 선택의 문제이며 돈을 주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지극히 평면적인 사고는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출산 지원금 정책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비용이 너무나 많이 드는 현실에 대한 표피적 인식에서 나온다.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대한 통찰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이 비판을 받는 것이다.

출산율 저하를 개인적 선호나 경제적 문제로 환원하는 논리, 지원금을 포함해 결혼한 부부의 육아 지원에 집중되는 정책은 여당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내세웠으나 정부의 여성정책에는 어떤 전격적인 시도도 보이지 않는다. 가령 정부가 여성의 재생산 권리 보장에 보이는 미온적인 태도는 현 정부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증거다. 합법적 의료지원과 혐오범죄 근절에 대해 여성들과 적극 소통하며 젊은 여성들이 안전하게 성적 주체로서 살 수 있는 방안,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조건들을 마련하는 일이 더 급선무다. 여성 보좌관들에게 둘러싸인 대통령의 사진을 공개하는 시대착오적 퍼포먼스는 정부 현안에서 여성 문제가 뒷전이라는 역설적 증거다.

연애도, 결혼도, 아이를 키우기도 힘들다. 결혼과 육아의 현실은 성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경험이다. 게다가 어떻게든 아이를 남보다 뒤처지지 않는 조건으로 키워야 하고 남보다 손해를 보면 안된다는 무서운 경쟁적 분위기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총체적 불안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지난 두 정권에서 가속화된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성년이 된 세대에게는 더 그럴 것이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출산장려정책은 이런 두려움과 사뭇 동떨어진 것 같다. 출산과 노동을 적극적 자아실현과 관련된 선택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든다. 안정된 삶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분투 속에서 비출산은 비자발적 선택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학자금 대출, 자기방어적 경쟁, 고용불안을 젊은 세대가 살아내야 하는 일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기성세대다. 좋은 삶의 기준을 물질만능주의적으로 획일화하고 남과 다른 삶의 가능성들을 두려워하게 만든 것도 기성세대다. 상속이 아니면 주택 소유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가치관을 바꾸라는 요구를 하는 건 견강부회다. 

인구절벽을 염려하는 이 분위기에서 마치 아이는 태어나기만 하면 환영받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결혼을 하지 않고 출산을 한다면? 부모 중 한쪽 또는 양쪽이 이주민이라면? 아이가 성소수자로 자란다면?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 것조차도 무책임한 일로 간주되는 일이 흔치 않은가. 방어적 경쟁심, 고질적 불안감이 비관용을 넘어 혐오로 표출되는 사회에서, 몇 가지 전략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는 없다.

인구관리 차원에서 출산에 접근하면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당장 출산율을 높이려는 시도보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근원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거시적 안목으로 기획하고 지속해야 한다. 출산과 육아가 근본적으로 별로 돈이 들지 않는 일이 되도록 복지체계 전반을 재조직해야 하며,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교육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모든 문제는 맞닿아 있다. 성평등정책, 교육정책, 부동산정책, 경제정책과 다 상관이 있는 것이다. 지난 두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 못지않게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회구조 개선과 삶의 질 향상에 대한 대통령과 현 정부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비전과 잘 조율된 실천이다. 그런 큰 그림을 설득력있게 구상하여 현실화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는 실질적으로 답해야 한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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