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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법부가 13일 일흔 돌을 맞았다. 그러나 ‘양승태 사법농단’의 짙은 그늘 속에 법원도, 법관도 축하받지 못했다.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삼가온 문 대통령이 ‘재판거래’라는 용어까지 사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수사 방해’에 가까운 법원의 행태로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질타로 봐야 할 것이다.

사법의 위기는 총체적이다. 정의와 인권의 보루여야 할 법원이 온 나라의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관사찰·재판거래 의혹으로 전·현직 법관들이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고,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대법원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에만 골몰해 압수수색영장을 줄줄이 기각하고 있다. 그사이 핵심 피의자가 주요 증거물을 인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진상규명을 촉구해온 전국법관대표회의조차 ‘영장 기각률 90%’라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침묵하고 있다. 오죽하면 ‘신(新)사법농단’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에 대해 “매우 참담한 사건”이라며 “사법부의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하고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또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으나,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시민의 분노와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는 듯하다. 지금은 법원 내부에서 통용되는 관행으로 시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관련 법률과 내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무엇이든 결단하고 행동할 때다. 피의자와 인연이 있는데도 영장심사를 회피하지 않은 영장전담판사는 교체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판사 1명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체제에서 탈피해 합의부(법관 3명) 형태의 전담 재판부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개혁이란 없다.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사법부의 모든 구성원은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사법농단 진상규명에 협조해야 한다. 과거의 재판거래 의혹은 덮어둔 채, 앞으로 ‘좋은 재판’을 하겠다는 다짐은 허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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