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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자취하는 진만이 앓아누운 것은 지난주 목요일의 일이었다.

휴게소 아르바이트 출근 시간이 다 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진만을 툭툭 건드려 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깨까지 벌벌 떨면서 애벌레 모양으로 이불을 제 몸에 감았다.

“너무 추워. 보일러 좀 올리면 안 될까?”

11월이었지만, 아직도 낮에는 20도까지 기온이 올라갔다. 정용은 반팔 차림으로 멀거니 진만을 내려다보았다. 감기 걸렸나 보네. 알바 또 잘리겠군. 정용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일러 전원을 켰다. 그러곤 그 길로 나가 곧장 PC방으로 향했다. 알바 자리를 검색해볼 마음이었지만, 거의 아홉 시간 가까이 오버워치만 하다가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진만은 그때까지도 계속 이불을 친친 감고 있었다. 옆머리가 땀에 흠뻑 젖어 있었지만, 정용은 힐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을 뿐, 별다른 말은 걸지 않았다. 대신 오랫동안 보일러 컨트롤 기를 쳐다보았다. 실내온도는 28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음날에도 진만은 일어나지 못했다. 정용은 라면을 끓여 진만 앞으로 가져갔다.

“이거 좀 먹고…. 증상을 말해봐. 약국이라도 갔다 올 테니까.”

그제야 진만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부자리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시큼한 땀 냄새가 났지만, 잠을 푹 자서 그런지 피부는 좋아 보였다.

“목도 좀 아프고, 근육통도 있고, 몸살이지, 뭐….”

진만은 냄비 뚜껑에 라면을 덜어 천천히 먹었다.

“어제 너 나가고 없을 때, 아파 죽을 거 같았는데 누가 막 방문을 두들기는 거야. 신경 안 쓰고 계속 누워 있었는데 생각해보니까 너 같은 거야. 네가 열쇠를 안 갖고 나갔나? 그래서 몸을 질질 끌며 문을 열어주었는데….”

정용은 묵묵히 라면을 덜어 먹었다. 이거 옮는 거 아닌가,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웬 아주머니 한 명이 서 있는 거야. 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교회 주보를 내밀면서 예수님 믿고 천국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아주머니 저 추워요, 그랬지…. 그랬더니 흠칫 놀라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더라고.”

정용은 진만이 라면을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물도 떠다 주고 설거지까지 모두 혼자 했다. PC방에 나갔다가 돌아올 땐 약국에 들러 종합감기약을 샀다. 그리고 죽집 앞을 지나다가 소고기야채죽도 하나 샀다. 자취방에 돌아오니 진만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컴퓨터로 축구 중계를 보고 있었다. 정용이 죽을 내밀자, 뭐 이런걸…. 하면서 바닥까지 득득 긁으며 깨끗이 비웠다. 정용은 빈 용기를 보고 어쩐지 좀 억울하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진만은 밤늦게까지 축구 중계를 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정용은 진만을 거의 부축하다시피 해서 택시를 타고 인근 종합병원으로 갔다. 새벽 무렵부터 진만이 계속 구토를 하고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도 다시 펄펄 끓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응급실이라도 가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또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온 죽이 잘못된 것일까, 밤에 자다 깨서 보일러를 끈 게 문제였던 것일까, 정용은 진만의 옷을 대충 챙겨 입히면서 알 수 없는 죄책감마저 느꼈다. 아이 씨, 이래서 혼자 살아야 하는 건데….

병원에 도착해서 진만은 체온을 재고 의사의 진료를 받고 난 후, 곧장 외래 채혈실 앞으로 이동했다. 염증 수치 검사를 위한 것이었는데, 대기 환자가 제법 많았다. 정용과 진만은 외래 채혈실 앞 기다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대기 순번을 기다렸다. 의자에 앉아서도 진만은 계속 힘이 빠지는지 정용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무슨 큰 병이 아닐까?”

진만이 맥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큰일 아닐 거야. 병원이라는 게 다 겁주고 그러잖아.”

정용은 계속 정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젊은 남자 둘이서 어깨를 내어주고 앉아 있는 모습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색해 보였다. 복도를 지나가는 간호사와 환자들이 힐끔힐끔 진만과 정용을 쳐다보았다. 앞 의자에 앉은 머리가 짧은 중년 남자는 팔짱을 낀 채 노골적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대학 다닐 때부터 막 밤새우고 오후에 일어나고 그랬잖아. 술도 많이 마시고 식사도 제때 안 하고.”

진만은 그렇게 울먹거리면서 말하다가 급기야 정용의 가슴에 이마를 묻고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아, 이걸 어쩌나. 네가 대학 때 밤새 게임한 것도 좋고, 술 많이 마신 것도 좋은데, 그런데 이 얼굴 좀 치워주면 안 되겠니. 그렇게 말해야 하나? 아침부터 젊은 남자 두 명이 병원에 붙어 앉아서 이러고 있으면 사람들이 오해하잖니. 정용은 아예 시선을 천장에 두었다. 진만이 얼굴을 묻고 있는 왼쪽 가슴은 이미 축축하게 변해 버렸다.

그날 진만은 채혈을 한 후, 화장실에서 소변을 받아오라는 간호사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칸막이 화장실까지 진만을 따라 들어간 정용은(진만이 그것을 원했다), 진만이 소변을 받을 동안 내내 뒤에서 부축해주어야만 했다. 아이 씨, 혼자 살고 싶다. 정용은 그 생각뿐이었다. 이러다간 나도 병에 걸리고 말지.

진만의 병명은 ‘급성장염’이었다. 병원에서 타온 약을 먹은 지 사흘 만에 진만은 다시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용은 그렇지 않았다. 진만이 말을 걸어도 침묵하기 일쑤였고, 라면도 같이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진만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정용은 끝끝내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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