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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최준열 고객님. 재배열 클리닉에 잘 오셨습니다. 사전 주문서를 제출하지 않으셨군요. 상담을 원하십니까?”

준열은 다소 딱딱한 의자에 앉아 눈앞에 떠 있는 입체 영상을 바라보았다. 영상의 주인공은 삼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물론 준열은 젊은이의 그림 뒤에서 정말로 상담을 제안하는 존재가 인공지능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요. 상담을 해보고 결정할 생각입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면 상담사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모든 상담사는 재배열을 경험해 봤으므로 누구를 선택하든 유익한 상담이 될 겁니다. 우선 재배열 이전의 인간 속성을 고스란히 유지한 상담사가 있습니다. 재배열 후 선택할 직업에 맞게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상담사가 있고요. 유전공학으로 노화 지연 시술을 받은 상담사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인공지능이지요? 바로 상담할 수 있습니까?”

“예. 인공지능과 상담하고 싶어 하시는 분이 제일 적어서 마지막에 소개드리려 했습니다만, 바로 시작하시죠. 최준열 고객님은 현재 110세이시고, 재배열 후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로 이주하실 계획이군요. 그러면 기계 신체로 교체하시는 건 필수고요. 남은 건 재배열 시 정신을 어떻게 편집할지 결정하는 일입니다. 원하는 바를 말씀해보시죠.”

상담이 끝나면 미래의 자신을 재정의해야 하기 때문에 준열은 근 1년가량 신중하게 골라놓았던 질문을 던졌다.

“기계 몸에 들어가는 전자두뇌는 육체의 두뇌가 품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재현한다고 들었습니다. 신체 반응과 즉각 연계되는 감정 상태를 시뮬레이션하는 거야 어렵지 않겠죠.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살면서 누적되는 생각이 있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사랑에 대한 관념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죠. 그건 어떻게 재현합니까?”

“아시다시피 재배열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새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변형은 피할 수 없습니다. 변형을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들은 재배열을 안 받고 자연사를 선택하시든지, 유전공학으로 수명을 연장하시죠. 하지만 사랑이라는 관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정신을 재배열하시겠다면, 저희 인공지능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주입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사랑은 공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과 생명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사랑은 존중에서 출발하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은 더 많이 존중할 테고, 그처럼 사적인 존중은 보편적인 존중보다 조금 우위에 있겠지만요.”

준열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적인 수명을 다하고 재배열 시술을 받아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더 보편적인 사랑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류가 인공적인 몸으로 옮겨가면서 세상이 더 평화로워졌다는 건 통계가 증명하고 있었다.

“그럼 하나 더 묻죠. 낭만과 설렘과 동경은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알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를 과학자가 되도록 이끄는 건 진리를 향한 동경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한 행성에 굳이 식민지를 건설하는 탐험가들은 어떨까요? 알지 못하던 세계가 주는 설렘 때문에 무모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 겁니다. 이런 감정들이야말로 인류가 태양계 끝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힘이었는데요.”

인공지능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새 전자두뇌를 주문하실 때 선택할 수 있는 항목에 낭만이나 설렘이나 동경은 없습니다. 아직 그런 감정을 완벽히 재현할 수 없으니까요.”

준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솔직한 대답을 원했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상담사로 선택했다. 재배열 시술을 받은 사람들은 재배열과 전자두뇌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이라면 동경심이 쓸데없는 감정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유로파에 가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설렘과 동경이야말로 인간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들 없이 전자두뇌로 옮겨 갈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수명 연장 시술만 한 번 더 받겠습니다. 의사는 그래봐야 7년이 한계라고 했습니다만. 7년 뒤에 한 번 더 상담하러 오겠습니다. 부디 그때까지는 전자두뇌가 설렘과 동경심까지 구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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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지능이라고 단정짓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뇌의 작동 방식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공감 능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도 그런 징후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핵심인 두뇌는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일종의 관념적인 학습망을 형성하면서 발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공감 능력과 관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공지능은 공감 능력이 없기 때문에 소시오패스와 마찬가지로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한때 금단의 영역이던 뇌의 작동 방식을 낱낱이 해부해보고 인지과학 분야가 본격적으로 걸음을 떼기 시작했으니, 그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른다. 정말로 인간의 정신활동 전부를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때가 오면 바람직하지 않은 속성을 삭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근거 없는 편견, 폭력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충동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그보다 앞서 ‘인간성’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하고 재정의하려는 인류 단위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노력은 과학과 인문 양자를 두루 아울러야 하기 때문에 한동안 우리에게 힘들고도 중요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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