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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의료나 법무, 기록행정, 산업공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인간보다 평균적으로 나은 능력을 보여준 지는 오래되었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았으나 역사적으로 축적된 빅데이터들을 속속 기계학습하면서 이내 인공지능의 퍼포먼스는 기대했던 수준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되자 특정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특수법인격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졌고, 곧 인공지능은 법조계에서 변호사보나 검사보, 판사보라는 특수지위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법원에서 단기간의 인턴 과정을 거친 뒤 곧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역시 모두의 예상대로 불편부당한 인공지능의 판단에 격렬한 저항이 일기 시작했다. ‘동일범죄 동일처벌’이라는 원칙이 인공지능에 의해 철저히 관철되기 시작하자, 그동안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온갖 영향력을 동원해서 가벼운 처벌만 받곤 했던 기득권층이 거세게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과 밀착 관계에 있거나 그 자신 기득권층에 속하는 숱한 학자며 언론인 등이 인공지능 판사가 오히려 사회 갈등을 조장한다며 목소리를 쏟아냈다. 정치권 역시 양편으로 갈려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사회 구조의 긍정적 체질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이미 과학적 시뮬레이션으로 명쾌하게 증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드러나고 있는 사실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에 기득권층 일부는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인공지능 개발을 시도했다. 그들은 사회 전체에서 기득권층이 차지하는 역할이나 영향력이 너무나 크기에 동일범죄 동일처벌이라는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사회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논리를 인공지능의 기본 로직으로 심으려 했다. 그러나 실제 판결들을 빅데이터로 입력하자 인공지능은 수시로 자체 논리모순에 빠져 정지해 버렸다. 인공지능에겐 ‘내로남불’이라는 인간들의 뻔뻔함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그들은 전통적인 방법에 다시 기대기 시작했다.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로비를 통해 인공지능 도입 관련 시행령이나 법안들의 폐기는 물론, 아예 인공지능에 대한 특수법인격 제도 자체를 폐지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정치권의 개편으로 이어졌다.

기존 정당들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대신 사회적 공공선 및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특정 이익집단에 기대어 정치생명을 이어 온 사람들로 양분되는 대규모의 정계 개편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다가오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을 거쳐 새로운 정당들이 탄생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알파고 이후로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거라는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일기도 한다. 그런 상황을 전제로 인공지능에게 노동을 시켜 수익이 발생하면 세금을 어떻게 매길 것인가 하는 논쟁도 진행 중이다. 기본소득세나 기계세(로봇세) 논의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런데 그에 앞서 이런 이분법적 흑백논리, 즉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뛰어나다면 둘 중에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접근법만이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인 것은 아니다.

다나 해러웨이가 1985년에 발표한 논문 ‘사이보그 선언’에서 갈파했듯이 현대사회는 사이보그 문명이다. 인간이라는 자연과 과학기술이라는 인공물이 결합된 거대한 사이보그가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실체인 것이다. 즉 우리는 인간과 인공지능(과학기술) 사이에서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이 둘의 시너지를 추구해야 하는 게 맞다. 최근 인공지능의 개발 전략이 ‘적응형 자동화’로 가는 것도 바로 이런 방향이다. 적응형 자동화란 인간이 혼자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옆에서 보조해주면서 훨씬 더 잘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아이언맨’의 인공지능인 ‘자비스’와 같은 경우라면 이해가 쉬울까.

인공지능 판사가 실제로 등장한다면 위와 같은 가상 시나리오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인공지능이 휴머니티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길게 보아 인간 사회에 이익이 될 것은 틀림없다. 기득권층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게임의 법칙’이 공정하게 지켜지도록 돕기만 해도 사회의 효율성은 훨씬 올라가고 구성원들의 행복도나 삶의 만족도는 향상될 것이다. 이렇듯 인공지능이 인간사회에서 적응형 자동화 역할을 하는 시대가 최대한 빨리 오면 좋겠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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