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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다. 일기예보가 크게 빗나가 비난이 빗발칠 때면 기상청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하소연하곤 했다. “저희들이 하는 것은 예보(豫報)입니다. 확보(確報)가 아니고요.” 일기예보는 확실하게 정해진 사실을 알리는 것이 아니니 틀리더라도 제발 이해해달라는 얘기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옆자리의 다른 언론사 기자는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나의 상사도 어느 정도 생각이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상사한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1996년 중부 지방에 내린 폭우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폭우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기상청은 ‘소낙성 강우’라고만 되풀이했다. 그때 선배의 말이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세상에 사흘 내내 오는 소나기가 어디 있나.”

할 말이 없었다. 그해 7월 말 중부 지방에는 사흘 동안 300∼530㎜의 폭우가 내렸다. 89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수재민도 3만여명에 달했다. 재산피해도 4000억원에 가까웠다. 그런데 ‘소낙성 강우’라는 알 듯 모를 듯 한 비가 원인이라니. 쏟아지는 항의전화에 기상청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올여름 기상청이 들은 비난도 그때 못지않은 것 같다. 수도권을 강타할 것으로 예보됐던 태풍 ‘솔릭’이 멀찌감치 목포 부근으로 상륙한 것이 비난의 시작이었다. 대부분의 학교가 휴교했는데, 수도권에는 태풍이 오는 듯 마는 듯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솔릭’에 ‘행방이 묘연하여 기다려도 오지 않거나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끝남을 의미’한다는 뜻풀이를 붙여놓고 기상청을 비아냥대는 글이 오르기도 했다. 며칠 뒤인 지난달 28일 호우 예비 특보도 없이 퇴근 시간 서울에 60㎜ 이상 쏟아진 폭우도 비난을 더하게 했다. 퇴근길 시민들이 속수무책으로 폭우를 맞은 데다 사망자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기상청 예보국장이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가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그는 “당황스러움을 넘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상상하지 못한 현상” “30년 가까이 기상청에 근무했는데도 처음 보는 현상이다 보니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고 했다. 시민들은 “예보 책임자가 할 소리냐” “상상도 못하면서 왜 기상청에 있냐”고 했다.

예보국장의 말에도 일리는 있을 것이다. 전 세계가 지금 지구온난화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1.4도 상승했다고 한다. 여름은 19일 늘어나고 겨울은 18일 짧아졌다. 올여름 무더위도 역대 최강이었다. 100년이 넘는 기상 관측 사상 낮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오른 적은 지난해까지 1942년 8월1일 대구에서 딱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올여름 강원도 홍천의 최고기온이 41도까지 치솟는 등 7곳이 40도를 돌파했다. 공식 관측소가 있는 전국 95곳 중에서 3분의 2에 가까운 61곳에서 역대 최고기온이 바뀌었다. 상황이 이러니 30년 가까이 기상청에 근무한 사람도 처음 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기예보가 업무인 기상청이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어찌 알겠느냐”며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1996년의 폭우는 기상청에 많은 비난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기상예보전용 ‘슈퍼컴퓨터’가 도입되는 계기도 됐다. 많은 예산이 필요했던 탓에 이후로도 도입까지 몇 해가 걸리긴 했지만 슈퍼컴퓨터는 48시간까지 가능하던 단기예보를 72시간 이상으로 늘리는 등 예보 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높였다. 올해 쏟아진 비난도 기상청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기상청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예보기법을 도입할 것이라는 얘기가 반갑다. 벌써 2년 반 전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압승을 거둔 인공지능은 30년 안에 IQ가 1만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평균 100, 아무리 천재라도 200 안팎에 불과한 인간의 IQ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지능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기상청은 관측 자료와 슈퍼컴퓨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보관과 기상 분석 팀원들이 집단 토의를 통해 최종 예보 방향을 결정한다고 한다. 때로는 예보관의 경험과 주관이 예보에 큰 변수가 될 때도 있다고 한다.

요리는 정해진 매뉴얼보다 요리사의 손맛이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상은 요리가 아니다. 예보관의 경험이 부족해 예보가 달라졌다고 하면 어느 누가 이해해주겠는가.

일기예보는 정확한 과학적 근거에 따라 예보가 이뤄져야 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달라진 기후에 맞춰 예보모델부터 새로 만들어보길 바란다.

<김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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