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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차세대 스마트 하이웨이를 도입한다면서 공사에서 세부 계획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때만 해도 나는 그게 또 무슨 한심한 짓인가 싶었다. 자고로 ‘차세대’라는 말로 제목을 꾸민 사업치고 진부하지 않은 것이 드물었을뿐더러, 이제는 유행도 끝물이다 싶은 ‘스마트’라는 단어를 또 갖다붙인 것을 보면 세태를 읽는 감각도 한참 떨어진 사람들이 꾸민 일 아닌가 싶었다.

“고속도로가 스마트해진다고 해봤자, 뭐, 밥솥에서 연예인 목소리 나오게 하는 장치 수준 아니겠어요? 톨게이트에 음성 인식 장치나 달아 보려고 하는 건가?”

나는 영란 선배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영란 선배가 이번에도 나와 신나게 맞장구를 치며 공사의 높은 분들 욕을 같이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영란 선배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아닌 게 아니라, 막상 사업이 시작되자 일어난 변화는 대단히 진지했다. 사업 후에 기막힐 정도로 차 밀리는 일이 줄어들었고, 교통사고도 갈수록 줄어들었다.

“너무 신기한데요. 새로 깔아 놓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신호 관리 좀 더 잘한다고 이 정도까지 좋아질 수 있는 건가요?”

“그냥 신호만 관리하는 게 아니라, 중앙 컴퓨터가 고속도로 지나는 자동차마다 달려 있는 컴퓨터랑 실시간으로 서로 통신하는 거거든. 그래서 도로 지나는 차량 한 대 한 대마다 다 따져서 차들이 어디로 몰리고 어디로 갈지 계속 예측을 한다고. 그렇게 해서 제일 길이 덜 밀리고, 사고가 제일 덜 생기게 가는 길을 지능적으로 차량마다 분배해 주는 거니까.”

나는 점점 더 프로그램이 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책이라도 좀 읽어야 되는 건가 하고 고민했다. 그런 내 얼굴을 보고 영란 선배가 알쏭달쏭한 말을 던졌다.

“그러니까, 너도 이제 회식 때 농담 잘하는 방법 연습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말의 뜻을 나는 금방 깨닫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내가 공부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점은 곧 알 수 있었다.

중앙 컴퓨터의 프로그램 발전 속도는 나 따위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빨랐다. 어떻게 최고의 효율로 교통량을 분배할 수 있는지 그 원리를 우리가 어렴풋이 이해하기도 전에, 중앙 컴퓨터는 이제 도로에 보수 공사가 필요한 지역을 예측해서 지목해 주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프로그램을 개발해 준 회사의 수학자 한 사람은 대충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스스로 점점 더 효과적인 방식을 추가해 나가면서,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너무 심하게 복잡해졌고, 그조차도 이해를 포기했다.

컴퓨터가 하는 일은 하루에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 22만대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지휘하는 역할이었다. 그것은 22만개의 악기가 24시간 동안 연주하는 거대한 교향곡과 같았다. 우리 직원들은 그저 그 음악이 막연히 좋다고 느낄 뿐이었다. 어떤 화음과 어떤 리듬에 그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컴퓨터밖에 없어 보였다.

이러니, 우리 같은 실무자들을 두고 누가 일을 더 잘하는지, 더 잘 못하는지 따지는 평가는 거의 무의미해졌다. 프로그램을 유지 보수하거나 관리하는 일은 매뉴얼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작업을 기계처럼 따라하는 것뿐이다. 조금 무능한 직원이 프로그램을 돌린다고 해서 컴퓨터가 짜증내며 답답해하는 것도 아니었고, 조금 더 유능한 직원이 프로그램을 돌린다고 갑자기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회사가 관리하는 도로가 더 좋아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오직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어떻게 스스로를 개량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었다. 어떻게 개량하는 것이 좋은 선택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회사에 아무도 없었다. 그저 금년에는 컴퓨터가 좀 더 좋은 판단을 많이 내리기를 막연히 바라는 것이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올해에는 제때 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서낭당에서 비는 고대의 농부 심정과 비슷했다.

그러자 직원이 인사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오직 상사에게 얼마나 ‘인성’이 좋은 인간으로 비쳤느냐에 달려 있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는 직원들끼리 누가 더 보고서를 예쁘게 꾸미느냐로 경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번 업데이트 이후로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뽑혀 나오는 보고서가 가장 깔끔한 것을 모두 알게 되어 그런 경쟁도 끝이 났다. 성과는 모두 컴퓨터 프로그램이 내고 있으니, 직원들을 평가할 수 있는 항목 중에 사람이 따져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인성, 그 두 글자뿐이었다. 인성만큼은 컴퓨터가 아닌 사람이 평가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들 했다.

<!--imgtbl_start_2--><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RIGHT width=200><tr><td><!--imgsrc_start_2--><img src=http://img.khan.co.kr/news/2017/03/22/l_2017032301003096900265181.jpg width=200 hspace=1 vspace=1><!--imgsrc_end_2--></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2--><!--cap_end_2--></font></td></tr></table><!--imgtbl_end_2-->결국 요즘 우리 회사에서 인성이란, 상사와 얼마나 친한지, 상사에게 얼마나 아양을 더 잘 떨었는지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만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남과 비교될 수 있는 업무였다. 새로운 도로를 설계하고 더 나은 교통 법령을 제안하는 일도 컴퓨터가 하고 있으니, 직원들에게는 회식 자리에서 어떤 바보짓으로 부장을 웃길 수 있는지, 얼마나 충성스럽게 술을 받아 마시는 얼굴을 상무에게 보여 주는지, 하는 것이 핵심 업무 역량이었다. 상사에게 다른 인간을 거느리고 있다는 지배욕을 만족시켜 주는 것만은 컴퓨터가 따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 영란 선배가 나에게 농담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저녁 회식을 앞두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인공지능 추천 기능이 보여 준 ‘가장 반응이 좋은 아저씨 개그 20선’을 열심히 외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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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건 앞으로 5년 이상의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인공지능의 발전을 염두에도 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계획이 아닐까, 나는 의심한다. 모든 영역에 찾아올 이러한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조직의 문화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더 적극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얼마 후 그 차이로 인한 격차는 우울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연출할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곽재식 화학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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