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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무거우니까 죽이 아닐까.

트럭 위로 호박죽과 전복죽이 가득 담긴 들통을 나르면서 정용은 그런 생각을 했다. 된장국을 나르고, 접시 200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박스를 옮기고, 플라스틱 원형 테이블을 짐칸에 실을 때까지만 해도 그러지 않았는데, 죽을 나르고 나니 온몸이 흐물흐물 공기 중으로 풀어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 겨우 아침 8시가 지났을 뿐인데…. 아르바이트 종료 시간은 오후 6시라고 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토요일 아침, 정용과 진만은 출장 뷔페 아르바이트를 뛰기로 했다. 대학 선배의 소개로 나가게 된 아르바이트인데, 일당은 7만원이었다.

뷔페 알바? 그거 뭐 대충 접시 들고 왔다 갔다 하면 끝나는 거 아닌가?

진만은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정용 또한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뭐, 서빙 정도야….

정용은 그간 몇몇 아르바이트를 경험했었다. 국도 보수공사 현장에서 신호수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도 있었고, 남들 다하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도 수개월간 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정용은 구세군 봉사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었는데, 그건 산타 복장을 한 채 지하철역에서 하루 종일 종을 흔드는 일이었다(그 일은 단순했지만 그래서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무엇보다 손목이 너무 아파서 조금 쉬려고만 하면 엄마들이 아이 손에 지폐를 들려 냄비 앞으로 보내는 바람에… 아이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정용은 다시 열심히 종을 흔들어댔다). 

그런 경험 때문에 출장 뷔페 아르바이트를 우습게 여긴 게 사실이었다. 접시도 먹는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거지, 우리야 뭐 음식이 떨어지면 채우는 게 전부일 거야. 정용은 진만에게 그렇게 말을 보탰다. 그러니까 그들은 ‘출장’이라는 단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게 맞았다. 트럭에 음식과 테이블과 의자를 싣고, 다시 그것을 내리고 배치하고, 식사가 끝나면 다시 원위치로 옮기는 그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오직 접시만 생각한 것이었다. 짐을 모두 트럭 위로 나른 후,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승합차에 오르자마자 진만은 정용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거… 출장 뷔페가 아니라 이삿짐센터 일 같아….

 

출장 뷔페 장소는 광역시 외곽에 있는 한 청소기 부품 생산 공장이었다. 출장 뷔페 업체 부장이기도 한 선배의 말에 따르면, 청소기에 들어가는 호스를 생산하는 공장인데 사장이 직원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식사 자리라고 했다.

특별한 것도 좋고, 사장님 뜻도 좋은데, 뷔페 장소가 공장 물품창고 안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정용과 진만은 음식을 내리기도 전에 공장 안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플라스틱 부품들과 박스를 한쪽으로 치워야만 했다. 그런 다음 다시 죽을 내리고 초밥을 내리고 매실차를 내리고 인절미를 내렸다. 정용은 그것이 이상했다. 출장 뷔페 아르바이트생들이 모두 달라붙어 청소했다고는 해도 먼지와 기름때와 박스가 어지럽게 뒤섞인 물품창고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 어쩐지 수상쩍고 찜찜했다. 이 공장은 직원 식당도 없나 봐? 정용은 테이블을 나르면서 진만에게 말했다. 진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우물우물, 다른 아르바이트생들 몰래 인절미를 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오가 되자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하나둘 물품창고 안으로 들어와 테이블에 앉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은 사오십대 여자 직원들이었고, 간간이 외국인 노동자들도 눈에 띄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정용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황급히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용과 진만은 업체에서 내준 나비넥타이에 조끼까지 갖춰 입고 음식 뒤에 서 있었는데, 어째 영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쉬이 지울 길 없었다. 

직원들의 표정이 음식을 앞에 둔 사람의 그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잘못을 저지르고 교무실에 끌려온 중학생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의문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장이 맨 앞 테이블에 서서 말을 하기 시작하자마자 비로소 풀리게 되었다.

자, 아무래도 이게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는 마지막 식사가 될 거 같아요….

사장은 조금 쉰 목소리로, 띄엄띄엄 직원들의 얼굴을 둘러보다가, 다시 찬찬히 말을 이었다.

버틸 때까지 버티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그게 참 여러분한테 미안해요….

누군가 훌쩍훌쩍 우는 것 같더니, 급기야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직원들이 고개를 숙인 채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정용은 조금 당황했지만, 티 내지 않고 서 있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이렇게 되고 나니까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게… 우리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르완과 몽골에서 온 샤카디… 그밖에 다른 외국인 직원들 밖에서 밥 한번 제대로 못 사준 게… 그게 참 마음에 많이 남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거니까… 눈치 보지 말고, 이젠 잡으러 올 사람도 없으니까 편하게… 그렇게 밥들 먹었으면 해요….

사장이 말을 끝냈지만, 아무도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 한 명이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날 두 시 무렵, 정용과 진만은 남은 음식을 다시 트럭에 실었다. 대부분의 음식들이 많이 남았지만, 그중 특히 죽은 거의 손대지 않은 상태였다. 정용과 진만은 함께 들통을 들고 날랐다. 죽은 아침보다 훨씬 더 무거워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왜 아무도 죽에는 손을 안 댔냐….

진만이 끙끙거리면서 말했다.

너 같으면 이 와중에 죽 먹고 싶겠냐?

정용 또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 이제 다 뭐 먹고 사냐….

진만이 그렇게 말하자, 정용이 다시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나 나 같은 알바생이 되겠지.

정용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혹시 일이 일찍 끝나 일당을 적게 주는 것은 아닌지, 계속 그것이 걱정되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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