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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씨의 출근

강화 근육용 강화 아침을 먹고 S씨는 현관 옆 벽에서 자전거를 내려 출근길에 나섰다. 도로는 이미 각양각색의 자전거들이 일사불란하게 고속으로 달리고 있다. 모두 인공 근골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시내에서는 물론 도시와 도시 사이 이동과 운송도 자전거로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거추장스러운 자동차들은 좁은 자동차 전용 차로에서 띄엄띄엄 보일 뿐이다. 가볍고 단단한 인공 골격과 쉽게 지치지 않는 고출력 인공 근육은 삶을, 그리고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엔진 하나의 출력을 가진 삶, 한 집 한 집이 발전소 하나의 전력을 내는 세상으로.

회사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 S씨는 다른 자전거 이용자들과 함께 속도를 줄이며 중앙 차로를 비운다. 잠시 후 자전거 한 대가 초고속으로 스쳐지나가고 경찰 자전거가 그 뒤를 쫓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사이렌을 울리자 사람들이 잘 비켜준 덕에 용의자가 도망치는 것도 더 수월해졌다. P순경은 혀를 차고 페달을 더 빨리 밟았다. 인공 근골격 때문에 범죄자들만 좋아졌다니까. 총기 소지를 금지해봤자 강철도 구부리는 불법 개조 근육으로 별별 흉악한 범죄들을 다 저지르고 쉽게 도망친다. 하지만 이번엔 어림없지. 거의 다 따라잡았다. P순경은 마비 다트를 던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용의자가 뒤를 돌아보더니 갑자기 자전거에서 높이 뛰어올랐다. 등에서 철사와 비닐로 된 우산 같은 형상이 펼쳐지더니, 날개가 되고…. 인공 근골격으로 힘차게 팔을 휘젓자 용의자는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날아가 버린다. P순경은 닭 쫓던 개의 심정이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으로 멈춰 섰다. 젠장, 이젠 새총도 가지고 다녀야 되나?

(하늘 도시)

도시의 빌딩들은 이제 승강기나 자동계단이 하나도 없다. 형식적으로 놓은 끝없는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인공 근골격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공 근골격을 갖춘 사람들은 이제 결코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날개옷을 입고 발코니에서 발코니로 깃털처럼, 요정이나 천사들처럼 우아하게 활공할 뿐이다. 처음에는 부유한 장애인들을 위해 극소수의 시술만 행해졌지만 기술에 숨어 있던 가능성들이 슬며시 드러나자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세상의 수직과 수평은 순식간에 새로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재편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 선녀와 농사꾼

도시 아래에서 사람들은 예전과 똑같이 살아간다. 좀 꽤 오래전의 예전이지만, 환경오염을 핑계로 내연 기관 사용이 금지되어 소로 밭을 갈고 돛단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는다. 그러다 가뭄이 들거나 태풍이 불면 굶어 죽거나 빠져 죽는다. 별일 없어도 그냥들 많이 죽는다.

아침을 굶은 H는 밭에 나가는 대신 동구 밖 들판으로 나가 보았다. 간밤에 바람이 많이 불었고, 이런 날이면 가끔씩 도시에서 날아온 신기한 쓰레기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쓰레기가 하나도 없었다. H는 실망해서 도시 쪽으로 계속 걸어가 보다가 결국은 힘이 빠져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를 발견했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날개옷은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게 뒤엉켜 휘감겨 있었다. H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날개옷만 챙겨갈까? 아니면, 여자를 데려가고 날개옷은 감추면 어떨까? 여자는 희고 고운 얼굴에 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고 부드러웠지만 한없이 단단하고 강해보였다. 새 같아. S는 예전에 잡아먹으려다 놓아주었던, 날개 다친 새를 떠올렸다. 작고 검은, 꼬리 끝이 두 갈래인. 그리고 결심하고 여자를 안고 일어섰다. 다친 사람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내가 미쳤나봐. 여자는 가벼웠다. 한참 걸어야겠지만, 어쩌면 도중에 누군가 날아다니다 보고 내려와 도와줄지도 모른다. H는 힘을 내어 도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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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공 근육은 로봇의 보다 부드러운 움직임이나 미세 로봇 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개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사고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도 긴요하겠죠. 그러나 만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효율과 출력의 인공 근육이 개발된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문어나 오징어처럼 되지 않는 이상 강화된 근육만으로는 운동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골격과 관절의 강화도 필수적이며, 그렇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지금 운동화를 신고 운동복을 입는 것처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강화된 신체를 입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리잭>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던 로버트 셰클리의 <불사판매 주식회사>는 인공 근골격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육신을 사서 입음으로써 영생하는 부자들을 다룬 SF입니다. 인공 근골격을 바탕으로 강화된 신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도 그럴 만한 재력을 갖춘 사람들이지 않을까요?

과학 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할지, 아니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지에 대한 논란은 과학 기술의 발전이 끝나지 않는 한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개인과 개인을 나누는 가장 원초적인 경계인 육체에서부터,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과학 기술에 따라 비약적인 차이가 나게 된다면 그 사회적 파장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각자 다른 종으로, 소가 닭을 보고 닭이 소를 보듯이 보게 되지는 않을까요? 그때 과연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공존하며 살 수 있을까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면, 하고 혀를 찼다는 고대 로마 시인이 떠오릅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사람들의 의식도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각자 다른 배경과 능력과 성취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사람으로 똑같이 존중하고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곳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의식부터 먼저 성장해야 과학 기술도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박성환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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