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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파!”

형서와 찬우는 다소 긴장된 얼굴로 소행성 아포피스의 표면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곳은 소행성 채굴 우주선 ‘마이더스호’의 조종석이었다.

아포피스의 표면에서 먼지가 살짝 피어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발파’라는 거친 단어에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형서와 찬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두 번 다시 지구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는 여정의 반환점을 지금 막 성공적으로 돌았다. 먼지가 우주 공간 속으로 흩어지자 아포피스에 찰싹 달라붙은 채굴 기계 ‘거미호’의 모습이 드러났다. 거미의 배에서 나온 파공기는 표면 밑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방금 두 사람은 파공기 끄트머리에서 자그마한 폭발을 일으킨 참이었다.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치밀하게 계산해 자그마한 폭발을 일으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만에 하나 진동이 커서 아포피스의 궤도가 바뀌거나 거미호에 이상이 생기면 이 모든 고생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형서는 조종석에서 일어섰다. 찬우는 벌써 선외작업용 우주복에 하반신을 집어넣고 있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아포피스 표면으로 직접 나와 작업을 한 지 네 시간째. 형서는 또 한 번 고개를 돌려 마이더스호가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자 우주복 헬멧 속에서 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훈련 받은 거 다 까먹었어? 이제 그만 좀 보라고.”

형서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구를 떠나기 전까지 수없이 반복했던 시뮬레이션 훈련이 떠올랐다. 당시 훈련 담당자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잔소리를 반복했다.

“최형서씨, 아포피스 표면에 내려가면 소행성 지면을 지구의 땅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감각에 혼란이 와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요. 마이더스호도 자꾸 확인하지 마세요. 불안감을 키우면 작업이 힘들어요.”

훈련 담당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형서도 아포피스의 표면에 내려설 때는 서른다섯 평생 몸에 익혔던 기억과 공간감각이 뒤섞여 잠시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그가 머리 위에 떠 있는 마이더스호를 자꾸 쳐다보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지구를 떠난 우주 공간에서 단 하나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우주선. 거미호. 소행성. 소행성 속에 대량으로 뒤엉켜 있는 백금. 그리고 옆에서 형서와 찬우를 도와 작업을 하고 있는 인공지능 탑재 로봇 도우미 세 대. 그 모든 게 한 데 어우러져 알 듯 모를 듯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형서는 자신도 파악 못한 감상을 찬우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어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작업에 집중했다.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찰나의 간격을 두고 전해지는 묵직한 진동.

“몸을 숙여!”

형서는 찬우의 고함소리를 듣고 자세를 바꾸며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거미가 소행성 속에 집어넣고 있는 채굴기가 지나치게 단단한 물체에 부딪혔군. 훈련 담당자가 뭐라고 했더라. 큰 파편이 날아다니지 않아야 합니다. 스치기만 해도 우주복이 파손돼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명심하세요. 그리고 뒤이어 형서의 앞을 막는 그림자. 무언가가 부딪치는 느낌. 우주복 밖에는 공기가 없건만 형서는 부서지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채굴 도우미 로봇이 공중에 살짝 떴다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보고를 했다.

“파편은 막았습니다. 위험 요소가 사라졌으니 작업을 재개하겠습니다.”

형서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로봇은 그를 향해 날아오던 돌덩이를 몸으로 막아주었다. 그리고 목숨을 구해주었다. 인간보다 월등한 센서와 움직임으로.

“괜찮아?”

형서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묘한 감상의 정체를 문득 깨달았다. 마이더스호와 거미와 채굴을 돕는 인공지능들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야. 고향행성에서 멀리 떨어져 나오면 인공지능과 기계는 삶의 일부라고. 앞으로는 다들 그렇게 살겠지. 형서는 이제 마이더스호를 등지고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자그마하고 짧은 아포피스의 지평선 너머로 광활한 우주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그 안에서 수백, 수천의 마이더스호와 인간과 로봇들이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광경을 얼핏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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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진출이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기술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우주 진출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그것만이 아니다.

지금 당장 뉴스의 과학기술면에서는 소행성에서 희귀 금속을 채굴해 막대한 금전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화성에 무인기계들이 착륙해 물과 생명의 흔적을 찾는다는 건 벌써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 하지만 전자는 어디까지나 구글을 비롯한 자본주의 첨병들의 이야기다. 후자는 나사와 과학자들의 업적이었다. 그 두 진영이 우주로 걸음을 내딛는 동안 우리는 아직도 생계를 걱정하고, 공해와 아이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사이에는 분명히 좁지 않은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뛰어넘으려면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그 추진력은 뭘까. 개척정신이나 도전정신이라는 막연한 개념?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압력이 등을 떠밀 때 우주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 압력이 빈곤이나 지구 오염처럼 비극적인 상황이어서는 안된다. 지구 밖은 절박함에 쫓긴 자들을 너그러이 받아줄 만큼 녹록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동체 지구의 내실을 다지고, 기계와 더불어 우주 개척지를 원만히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의식을 성장시켜야 비로소 우주는 위험한 모험이 아니라 진짜 삶의 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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