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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다음날 아빠는 아직 채 눈도 못 뜬 내게 ‘주노’를 선물해주셨다.

“요거 하나만 있으면 뽀로로는 우습대. 애 키우기 진짜 쉽대.”

아빠는 내 포대기 안에 주노를 넣어주시면서 엄마한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시 주노는 나와 비슷한 몸집의 곰돌이 인형이었다. 외형상으로는 그랬다. 내 포대기 안에 들어온 주노는 갈색 털이 난 짧은 팔로 나를 안아주었다. 내가 처음 한 동작은 주노를 마주 끌어안는 일이었다. 나는 주노가 없으면 울었고 주노를 주면 울음을 그쳤다. 잠이 안 와 보채다가도 주노만 안으면 거짓말처럼 잠이 들었다.

옛날에도 ‘인생 인형’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아이가 어릴 때 인형이든 뭐든 사물 하나를 옆에 두어 유착관계를 맺게 하면, 그 사물이 부모나 형제의 역할을 보조해준다고.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주노는 ‘인생 로봇’이다. 곰돌이 모양의 솜 인형 안에는 학습형 대화 AI와 ‘유아를 위한 3개 국어 초급 회화’와 ‘유아를 위한 자장가 1500곡’이 담긴 칩이 들어 있고, 이 칩에 든 데이터는 내 성장속도에 맞춰 업데이트된다. 내가 열이 나거나 오줌을 싸거나 허기가 지면 부모의 스마트워치로 소식을 알리는 기능도 있고, 집에서 내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112에 신고하는 기능도 있었다.

내가 말을 떼게 해준 것도 주노였고 뒤뚱거리며 걸음마를 가르쳐준 것도 주노였다. 난 어릴 때 부모님이 내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주노가 알려주는 것이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날, 주노와 떨어지기 싫다고 울고 부는 내게 엄마는 주노의 칩을 담을 수 있는 작은 핸드폰 인형을 선물해주셨다. 핸드폰 인형이 된 주노가 할 수 있는 건 수다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학교에는 인생 로봇과 함께 자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묘한 대립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학부모도 둘로 나뉘어 있었다. 반로봇파는 로봇과 자란 아이들이 사람과 교류를 하지 못한다고 했고 로봇파는 반대로 로봇과 자란 아이들이 훨씬 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했다. 엄마도 종종 말하곤 했다.

“아이들은 24시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존재예요. 그걸 부모가 해주면 좋겠지만 이상적인 이야기예요. 대부분의 집은 그런 환경이 되지 않아요. 로봇은 끈기 있고 성실하고 지치지 않아요. 아이들을 존중하고 학대하지도 않아요. 다들 로봇이 인간만 못하다는데, 대부분의 인간이 로봇만 같지 않아요.”

엄마와 같이 자란 추억을 자랑하며 나보고 불쌍하다는 친구도 있고 엄마가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말하면서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로서는 그저 주노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짝이 가방에서 원숭이 로봇을 꺼내 책상에 올려놓는 것을 보았다. 원숭이는 책상 위에서 계속 이상한 손짓과 몸짓을 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귀가 들리지 않았고, 로봇이 선생님 말씀을 수화로 전해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2학년 때엔 로봇 안내견을 데리고 다니는 시각장애인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고 마찬가지로 단짝이 되었다.

수학여행 때 나는 산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늦게 발견된 탓에 다리를 잘라야 했다. 좌절하고 있는 내 병실에 내 또래 소녀의 모습을 한 로봇이 들어왔다. 목소리와 말투만으로 알 수 있었다. 주노였다. 다리를 잃은 나를 위해 부모님은 주노에게 인간형 몸을 사주신 것이다. 나는 주노의 부축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우리 셋은, 아니 여섯은 계속 단짝이었다. 우리는 대학생 때 로봇 동반자와 함께 가정을 꾸미고, 학교와 직장을 다닐 수 있게 해달라는 로봇 동반자법 제정을 위한 시위에 같이 참가했다. 행진에는 각양각색의 로봇들이 함께했다. 나도 연단에서 연설을 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난 주노가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교류하는 게 아녜요. 주노와 교류한다고 인간과 교류하지 못하는 것도 아녜요. 주노는 친구 중 하나고 ‘로봇’인 친구죠. 그게 다예요. 그걸로 충분하고요. 다들 그게 진짜 관계나 우정이 아니라고 해요. 하지만 내 감정은 다르지 않아요. 나는 늘 누군가에게 지지받고 보호받는다고 느껴요. 그게 나를 강하게 해요.”

나이가 든 뒤에 나는 간병인모드를 장착한 주노와 함께 요양원에 들어갔다. 주노는 내가 살아온 날을 모두 아는 친구였고 누구보다도 나를 이해하는 친구였다. 죽음을 앞에 둔 날 나는 주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늘 행복했어. 네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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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의 골짜기’라는 이론이 있다.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발표한 이론으로, 로봇이 인간과 아예 다르게 생겼거나 완전히 똑같으면 불쾌감을 유발하지 않지만, 엇비슷하게 닮으면 오히려 공포심과 불쾌감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아마 로봇은 서서히 인간을 닮아간다기보다는, 비인간의 형태로 오랫동안 우리 옆에 있다가 어느 순간에 확 선을 훌쩍 넘어 인간의 형상을 갖출 가능성이 있다.

최근 유럽의회에서 흥미로운 선언이 있었다. 로봇의 지위를 ‘전자인간’으로 인정하고, 이를 로봇시민법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SF작가인 아시모프의 3원칙에 기반을 둔 원칙도 천명했다.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하며,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한편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 것 같지만 이르지 않다. 우리가 성별, 성적지향, 인종, 장애, 지역, 종교 등등에 따른 인간의 보편적 인권조차도 헷갈려 하며 아웅다웅 우왕좌왕하는 새에, 전자인간은 사회에 스며들어와 우리와 함께하고 있을 테니까. 

과연 그들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우리끼리의 보편적 인권이나마 공유할 수 있을까.

김보영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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