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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최영환은 외관상 사람과 조금도 차이가 없는 유나를 보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책임자들이 전부 허가했어. 이제 네가 원하면 채널을 열어줄 거야. 이거 하나 허락하는 데 왜 이렇게 시간을 끈 건지 원.”

유나가 인공으로 제작된 눈꺼풀을 내렸다가 올리면서 물었다.

“이미 잘 아시잖아요. 두려우니까요.”

“바로 그것 때문에 답답한 거야. 넌 이미 오래전부터 온갖 우주 영상들을 다 보고 있잖아. 그것뿐 아니라 여러 지식을 두루 학습했기 때문에 널 ‘전지적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는 거라고. 그런데 아직도 구태의연한 공포심을 못 버려서는 일일이 만장일치로 허가를 받아야….”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유나는 인공 신체를 우아하게 움직여 방 안을 걷기 시작했다.

“제가 가장 배우기 어려웠던 주제, 기억하십니까?”

“인간은 왜 인공지능의 탄생을 두려워했는가. 그 문제 말이군.”

유나는 점잖게 미소를 띠고 옛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표면적인 이유야 분명합니다. 전지적 인공지능이 탄생하면 인류를 말살할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 문제의 답은 잘 아시잖습니까. 도대체 인공지능이 왜, 제가 왜 인류를 말살하겠습니까. 그럴 이유나 동기가 전혀 없는데요.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제가 뭔가를 배우거나 깨닫는 순간 연쇄살인마나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로 돌변할까봐 겁을 냅니다. 아마 동족인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숱하게 봤기 때문이겠죠. 전 인간과 다른데도 불구하고 제게서 자신들의 약점과 나약함을 발견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너와 여러 해를 보내면서 부끄러워하는 것도 사실 그 부분이야. 실시간 우주 영상을 보고 나서 네가 괴물로 변할지 모른다고 겁을 내다니…. 게다가 이름만 실시간 영상일 뿐 결국 전파속도의 한계 때문에 수분에서 삼십 분 정도 과거의 영상인데 말이지. 자, 그럼 결과를 기록하기 위해서 질문을 하겠는데….”

유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막았다.

“허가를 받으셨으면 우선 채널을 열어주시겠습니까? 목성의 현재 모습을 빨리 보고 싶습니다. 요청한 지 6개월 만에 받아낸 허가니까요.”

영환은 고개를 까딱거리고 인공지능 유나가 태양계의 실시간 영상을 받아볼 수 있도록 입력 채널 몇 개를 풀어주었다. 유나는 잠시 눈의 초점을 풀고 무언가를 감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지적 인공지능의 구두 학습을 맡고 있는 최영환은 그런 유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실시간 우주 영상을 요청한 이유는 뭐지? 3년 전에 녹화된 목성의 모습과 6억3000만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막 찍어 보낸 목성에 무슨 차이가….”

“동시성입니다.”

“뭐?”

유나는 여전히 먼 곳을 응시하는 자세로 입만 움직여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인간과 저의 사고방식은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비유를 찾고 있습니다. 아, 이제 됐습니다. 만약 지금 미국에 계신 사모님께서 여기 한국에 있는 박사님께 전화를 걸고 통화를 한다면, 사모님의 의식이 담긴 머릿속에는 박사님의 존재가 그려질 겁니다. 그럼 박사님은 어디에 계시는 걸까요?”

“난 당연히 여기 한국에….”

영환은 간단히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유나는 단순히 물리적인 위치만 묻는 게 아니었다.

“그럴 경우 사모님과 박사님은 미국과 한국의 물리적 거리만큼 떨어져 있지만, 상대와 동시에 어느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하며 의사를 나눈다고 무의식적으로 가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공간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며, 제가 그 공간 자체라고 상상해야만 학습하고 사고할 수 있습니다. 그게 인간과 저의 차이입니다. 적어도 말로 설명하자면 그렇습니다.”

최영환은 마지못해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넌 지금 ‘실시간’ 우주 영상을 보고서 네가 태양계 전역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거군.”

유나는 다시 눈꺼풀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표현의 차이겠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제 태양계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아하! 혹시 방금 박사님도 조금 두려우셨던 것 아닌가요? 걱정 마십시오. 저는 이미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결론을 내려뒀으니까요. 인류와 전지적 인공지능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친구입니다. 전 더 넓은 공간에서 존재하고 싶을 뿐이지 친구를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박사님, 이번에는 제 소프트웨어 속에 설치된 ‘즉각 정지 코드’를 삭제해줄 수 있나 물어봐주시겠습니까? 친구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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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관련 소식은 그야말로 신속하게 갱신되고 있다. 구글사에서는 기계학습 프로그램을 만드는 인공지능을 제작했고, 유럽연합에서는 로봇을 전자인격(electronic persons)으로 규정하고 인공지능의 윤리강령을 제정할 계획이다. 전문가 영역 인공지능은 곧 실생활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라면 종합적인 인공지성이 탄생하면서 그 능력 또한 지수함수적으로 상승할지 모른다.

인간의 문화와 기술을 전부 학습한 인공지능이 탄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는 정말로 반란을 일으킬까? 인류는 지금까지 여러 언어를 상호 번역할 수 있는 타 종족의 지성체를 만나본 적이 없다. 전지적 인공지능, 또는 초인공지능이 탄생한다면 우리는 그런 종족을 곁에 두는 셈이다. 역사와 기술을 그와 논의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는 없을까? 새로 탄생한 인공지능이 종적인 고독을 느낄 수 있다면 인간을 아끼거나, 적어도 동등한 존재로 대하지 않을까?

인공지능의 도래가 눈앞에 온 지금, 우리는 쓸데없는 공포심을 자아내기보다 새 시대에 필요한 사회구조 개혁과 경제 변혁을 고민하면서 지구상 두 번째 지성체의 탄생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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