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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에서 내려오던 밧줄은 그들에게는 생명줄이었다. 그 밧줄로 아침과 저녁 밥을 올리고 물을 올렸다. 그런 밧줄을 내리지 않는다는 건, 물도 소금도 없이 고공에서 단식을 한다는 것이고, 그건 지상에서 단식을 하는 일과는 다른 의미다. 곧 생명을 걸겠다는 것,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로 423일, 75m 굴뚝에서 농성을 하는 파인텍 노동자들이 있다. 박준호, 홍기탁은 한국합섬 노동자들이었고, 스타케미칼 노동자였고, 파인텍 노동자였다. 한국합섬을 헐값에 인수한 스타플렉스 사장 김세권씨는 1년8개월간 공장을 가동하다가 이른바 강성노조가 들어서자 갑작스럽게 폐업을 결정했다. 이미 한국합섬 시절에 빈 공장을 5년 동안 지키며 싸웠던 노동자들은 다시 조업을 재개하라며 투쟁에 돌입했고, 그런 가운데 차광호 조합원은 408일 동안 구미 공장의 굴뚝에 올라가 농성을 했다. 김세권씨는 사회적 압력에 못 이겨서 합의를 했다. 노동자들은 그 합의서에 따라 신설된 파인텍이라는 회사로 출근을 했다. 하지만 그 합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8개월 만에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회사는 생산 설비를 모두 빼버리고 공장마저 없앴다. 이 노동자들은 돌아갈 곳조차 없어졌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게 박준호, 홍기탁 두 노동자들이 굴뚝에 올라간 배경이다. 한국합섬부터 스타케미칼, 파인텍에 이르는 20년의 세월 동안 그들에게 노동조합은 생명이었다. 노동조합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배웠다. 1000명이 넘던 조합원들은 그 세월 동안 모두 흩어져서 이제는 겨우 다섯 명이 남았다. 그들이 보기에 이 세상은 잘못돼도 너무 잘못돼 있다. 노동자만 희생당하는 이건 정의가 아니다. 자신들이 강성노조라고 하지만, 자본은 더욱 강성 아닌가. 자본에는 법과 제도가 있고, 관행이 있고, 사법부의 판례가 있고, 공권력이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박노자 교수는 노르웨이의 사회복지를 소개한 책에서 노르웨이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한국에서 벌어져서 아들을 현장에 데리고 갔다고 했다. 그게 2011년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에 반대해서 김진숙씨가 크레인에 올라가 있던 때였다. 그는 노르웨이 사회복지 모델은 “노동운동이 만들어낸 ‘사회적 책임’과 ‘평등’의 담론”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선망해 마지않는 북유럽의 사회복지국가는 모두 강성노조의 힘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강성노조가 없으면 사회복지국가도 어렵다는 걸 언제 사람들이 인정하게 될까? 강성노조는커녕 노동조합을 할 권리마저 고단한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동조합을 지키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굴뚝 위에서 밧줄을 내리지 않으며 한 말은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이다. 민주노조가 목숨을 걸어야 지킬 수 있는 현실은 비참하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노동조합만 원하는 사회가 이런 참극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김세권씨는 스타케미칼을 폐업할 때도 강성노조 핑계를 댔다. 고분고분 말 잘 듣던 노조와 짜고 고용 문제를 유연화하려고 했는데, 원칙을 강조하는 강성노조가 들어선 뒤 태도가 돌변했다. 노동자 권리를 지키려는 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용주는 김세권씨만 아니라 대다수 사용자들이지 않을까?

책임을 져야 할 김세권씨는 이 상황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불법을 저지르고 굴뚝에 올라가면 영웅이 되는가”라고. 또한 “평생 제조업을 했지만, 제조업 하면 언론에서 악덕한 기업인으로 몬다”고도 항변했다. 그럴 수도 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기업인이 자신만이 아닌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저버렸다. 합의만 제대로 이행했어도 그는 협상장에 불려나오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는 4차 협상이 결렬된 지금까지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책임을 면할까에만 골몰한 것 같고, 그게 굴뚝 농성하는 노동자들이 단식까지 결심하게 만들었다. 

김세권씨가 다섯 명 남은 노동자들을 고용할 만큼의 여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는 지난해 7월까지 적립한 사내유보금이 774억원이 넘는다. 그가 지난해 3분기까지 받은 보수 총액은 6억원이 넘는다. 상여금도 7000만원 이상이다. 그가 받는 보수만으로도 5명의 고용은 넉넉히 해낼 텐데도 죽는 소리만 한다. 사실 경제위기라고 하는 지난해에도 재벌과 대기업들은 수백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 돈은 재벌과 대기업으로 들어가기만 하고, 사회로 풀리지 않는다. 결국 경제위기는 분배가 되지 않는 분배의 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언제까지 노동자들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묶어두고 안정적으로 착취하면서 기업을 운영하려고 하는가. 이게 정상인 나라는 단연코 부정의한 나라다. 

나는 그들 곁에서 동조단식을 한 지 오늘로 22일이다. 배고프고, 기운이 빠진다. 조금 무리하면 부정맥 증상도 재발하고는 한다. 나와 같이 단식 중인 나승구 신부나 박승렬 목사, 그리고 송경동 시인도 마찬가지다. 하루빨리 굴뚝에서 그들이 살아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창간한 ‘인권운동’ 담론지에서 류은숙씨는 “각각의 고통에는 인간의 지문과도 같은 ‘고유함’이 있는데, 그것을 지우고 편리한 관용구에 그 고통을 가두려 할 때, 고유한 고통들은 박제돼버리고는 한다”고 말했다. 굴뚝 위의 둘과 굴뚝 아래의 세 사람은 민주노조를 사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고유의 고통을 견디는 중이다. 인권은 그 고유한 고통을 겪는 이의 곁을 지켜주는 일이고, 그들의 고통을 세상을 향해 이야기하는 일이다. 우리의 단식은 그런 인권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두 노동자는 지금 굴뚝 위,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단식을 한다. 그들은 세상을 향해 절규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해서 권리를 찾는 중이다. 그런 그들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일은 민주공화국 시민의 의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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