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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의 계절이 돌아왔다. 세계 수준급 마라톤 선수들은 평균 100m를 18초 밑도는 속도로 2시간 넘게 뛴다. 선수급 스피드가 아니더라도 42.195㎞를 한번에 달리는 일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이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주자들의 경쟁을 마라톤에 자주 비유한다. 인내와 전략이 필요한 장거리 레이스이고, 시종 흥미진진하다는 점에서 둘은 유사하다. 19대 대선까지는 2년6개월 남았지만 정치권에선 이미 레이스가 시작됐다. 특히 도전자인 야당이 더 급해 보인다.

먼저 출발한 사람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다. 모두가 아직은 몸이나 풀고 있으라고 만류할 때 그는 혼자서 신발 끈을 조여 매더니 스타트를 끊었다. 그는 친노 패권주의 논란에도 2·8 전당대회에 대표로 출마했고, 대표가 된 이후에는 시끄러운 당 개혁 이슈는 일단 미루고 대선 주자 행보를 이어갔다. 이미 큰 경기를 뛰어본 경험도 있는 간판선수인 문 대표는 단번에 지지율 30%에 근접하며 독보적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마라톤을 맨 앞에서 달리기는 정말 힘들다. 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뛰어야 한다. 당연히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당장 문 대표는 4·29 재·보궐선거 패배 후 비틀거리고 있다. 지지율은 크게 떨어졌고, 당 내에서는 그의 체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 민심은 아직 그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호흡법과 페이스 조절을 비공식 스태프에 의존하는 게 문제라는 말도 나온다.

상대팀의 견제도 극심하다. 새누리당을 향해 “선거에서 이겼으면 야당 대표 죽이기 그만하라(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고 할 정도다. 야당 대표로 대선 후보 1위였지만 본선에서는 잇따라 패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떠올리는 사람도 한둘 생기고 있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도 주자다. 안 의원은 한때 최고 유망주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심에서 상당히 멀어진 상태다. 각종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5~6%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 레이스를 도왔던 스태프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문 대표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그친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

그런 안 의원의 최근 행보는 흥미롭다. 그는 구민주계처럼 조건을 달지 않고 재·보선 지원에 선뜻 나섰고, 선거 패배 다음날에는 문 대표를 만나 비노 계열의 대표 흔들기와 선을 그었다. ‘바람벽 뒤에 숨어서 뛰어라’라는 마라톤 전략 조언이 연상된다. 아직은 비바람을 맞으며 앞서 뛸 체력이 아닌 만큼 일단 문 대표의 ‘리드’를 따라 함께 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문 대표가 추인한 공적연금 강화안을 반대한다며 틈새를 노리는 모습도 보였다. 기회만 되면 언제든 앞사람을 제치고 나가겠다는 집요함과 조급함의 일단이 확인된 것이다.

안철수 일러스트 (출처 : 경향DB)


박원순 서울시장도 마라톤화를 신고 있다. 그런데 재야의 고수로 알려졌던 그는 자칫 선두 그룹에서 제외될 상황이다. 쓰레기 종량제를 바꿔봐도, 할리우드 배우들을 불러와 서울에서 <어벤져스2>를 찍어도 논란만 일고 있다. 일부에선 이번 레이스에는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문 대표가 휘청하면서 야당 주자들의 마라톤은 더욱 재미있어졌다. 정치 평론가들은 야당 레이스는 후보들이 선두권을 형성하며 함께 뛸 때 더 주목받을 것이라고 한다. 서로에게 페이스메이커가 되면서 기록을 단축해 나가야 다른 팀 후보도 누를 수 있다.

앞서 가는 문 대표가 계속 선두에서 바람을 막으면서 달릴 수 있을지, 앞으로 치고나갈 기회를 노리는 안 의원이 언제쯤 스퍼트를 할지, 2그룹이나 3그룹에 속한 뜻밖의 선수가 빠른 속도로 뛰쳐나올지 등등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가 많다. 레이스는 이제 시작이고, 누가 결승 테이프를 끊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박영환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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