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당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는 정당조직론이다. 선거 연구자는 넘쳐나도 정당 연구자, 특히 정당조직 연구자가 거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많은 정치학자들이 강조하듯, 정당은 비공식적인 차원에서의 활동이 더 중요하고 지배적인 조직이다. 겉으로 드러난 공식적인 제도나 기구에만 주목한다면 전체의 극히 일부분밖에는 파악되지 않는 것이 정당이다.

정치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는 정당들 사이가 아니라 정당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격렬한 감정과 시기, 음모, 질투 나아가 느닷없는 각목 다툼과 자살 소동은 정당 내 공천권을 둘러싼 싸움에서 나타난다. 한 정당이 다른 정당을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당 조직 내부에서 상대 파벌과 다퉈 승리하는 일이 더욱 고통스럽다. 그렇기에 정당조직을 좋은 정치공동체로 만드는 일은 최고의 민주적 과업이 아닐 수 없는데, 야당은 이 과업에서 실패함으로써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했다. 최근 야당 최고위원들이 보여준 참을 수 없이 가볍고 저열한 행동들은 정당조직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가를 실증하는 한편, 야당 지지자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주었다.

기본적으로 조직(organization)은 살아있는 기관(organ)의 결합체를 뜻하는 것으로, 조직의 생명은 ‘분리될 수 없는 기능들의 유기적 조합’을 만드는 데 달려 있다.

정당도 하나의 조직이고, 그렇기에 정당조직 역시 하위 기능들 간의 유기적 조합이 어떠냐에 따라 튼튼해질 수도 있고 망가질 수도 있다. 인체의 머리에 해당하는 리더십과 이념, 몸통에 해당하는 상근 당 관료조직과 원내 정당, 그리고 손발에 해당하는 지역 조직과 대중적 지지기반 등으로 이어지는 유기체적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유기체는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정당이론에서 정당조직의 변화는 두 차원의 제약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나는 ‘정체성(identity)’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성(competition)’이다. 즉, 자신의 지지자들이 동일시할 수 있는 공동체적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 제약과 함께, 다른 정당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하고 잠재적 지지자를 찾아 움직여야 하는 제약 속에서 정당조직은 기능한다는 것이다.

분명 정당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 정당의 승리와 패배는 자신만이 아니라 상대 정당의 변화를 촉진하고, 이런 상호작용은 반복되는 연쇄의 고리를 형성한다. 그러나 정당은 시장상황에 따라 창업과 업종전환, 이탈과 혁신이 이어지는 기업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조직이다. 굳이 시장체제에 비유한다면, 정당정치는 완전경쟁시장이 아닌 독점시장과 유사한 구조적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당은 집합적 정체성에 기초를 둔 열정과 충성의 동원 없이 존립도 유지도 어렵다. 이는 지금의 야당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간 당 내부의 결속과 통합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당 밖 여론을 좇는 ‘계통 없는 정당 개혁’을 통해 조직으로서의 정당의 특성을 스스로 약화시켰고, 그 결과 내부 위기가 상존하는 악순환 구조에 빠졌기 때문이다.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오른쪽)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병기 국정원장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유례 없는 참 나쁜 인사로, 박정희 정권의 이후락을 연상케 한다. (출처 : 경향DB)


정당이 자신의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당내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서 문화적, 정서적으로 닮은 공동체적 특성을 만들지 못하면 타 정당과의 경쟁 이전에 생존 자체가 어려워진다.

민주주의는 그런 특성을 가진 정당공동체들이 복수로 존재해서 서로 경쟁해야만 사회를 더 넓게 통합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팀마다의 개성 있는 플레이가 살아야 좋은 축구 리그가 가능하듯, 민주주의도 색깔 있는 정당들의 멋진 팀플레이가 살아나야 좋아진다. 그렇지 않고 경기장에 나온 같은 팀 선수끼리 파벌로 나뉘어 다투고, 조직력 있는 팀플레이가 아니라 상대 팀을 야유하고 모욕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이루어진다면 누가 좋겠는가?

‘자신이 옳기 위한 정치’를 하면서 자신의 정당을 파탄 내는 일을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정당조직, 좋은 정당공동체를 만드는 긴 노력이 아닌 ‘매일 한 건’하려는 경박한 정치는 부디 절제되었으면 한다.

오케스트라가 전체적으로 잘 조율된 소리를 만들어야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듯이, 야당 역시 잘 조직된 역할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휘자가 관객을 향해 서 있고 악기 파트들마다 각자의 소리만 더 크게 내려고 경쟁하는 식의 여론동원정치를 계속할 수는 없지 않을까. 좋은 정당을 만드는 일이 최고의 선거 전략이라는 정치 규범이 자리 잡아야 야당이 산다.


박상훈 | 정치발전소 학교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