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흔히 한국인은 자신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그런 판단의 근거가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 아니면, 다수결 원칙? 주기적인 공직 선거?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라는 가설을 입증할 수 있는지 도전해보자. 

대한항공 사례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조현민은 대한항공에서 고함치고 욕하며 물컵을 던질 자유를 누렸다. 그런 자유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보장된다면 조현민에게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서 자유를 구가한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그만이 자기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었다. 

이 유일한 자유인이 전무로 복귀하자 직원들 사이에는 고통과 절망이 퍼져나갔다. 계열사인 진에어의 직원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들은 그가 없는 사이 조씨 일가가 망가뜨린 회사를 깁고 꿰매느라 백방으로 뛰었다. 그런데 그의 복귀로 정부가 제재를 풀 수도 있다는 전망이 흐려지면서 그들의 헌신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자기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 생활이 곧 그들의 삶이다. 이들에게 고통을 피할 길은 없다.

[장도리]2019년 6월 19일 (출처:경향신문DB)

미국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불만이 있는 사람의 선택지가 세 가지라고 했다. 이탈, 항의, 충성. 대한항공 직원은 이탈하지 못했다. 사표 던지고 다른 일자리를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항의는 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현민에게 충성하며 사는 수밖에 없는 건가?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발표한 것처럼 그건 ‘수치심’ ‘자괴감’ ‘불안감’ 속에서 사는 길이다. 문제는 이런 삶이 대한항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재벌·중소기업도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에서 삼성전자 직원의 말을 인용했다. “출근하면서 영혼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퇴근하면서 영혼을 다시 꺼내오는 것 같다.” 사실 한국인 거의 다 그렇게 산다. 회사 들어갈 때 시민권을 맡기고 대신 사원증, 즉 노예문서를 목에 건다. 물론 고위간부가 돼 부하 직원을 부리며 살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삼성 사건이 말해주듯 그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란,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봉건 영주 이재용의 세습을 뒷받침하거나 그의 재산을 관리해주는 것이다. 그들도 주체로서 당당한 삶을 살지는 못한다. 

민주주의는 자기통치의 원리에 기반한다. 자기를 구속하는 결정은 자신의 참여에 의해 이루어져야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민주주의 이론의 권위자인 로버트 달은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에서 그 논리를 기업으로 확장한다. 국가가 그러듯이 기업도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고, 국가처럼 기업에도 통치자·피통치자 관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기업에도 민주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자기통치권은 천부적 권리지만, 재산권은 아니다. 그러므로 둘이 충돌하면 자기통치권이 우선이다. 재벌 설립자의 자녀 혹은 손자라는 혈연이 수많은 남의 가족의 삶을 난폭하게 지배할 근거는 없다. 

때로는 군대 같고, 때로는 조폭 같은 한국 기업에서 자기통치의 권리는 언감생심일지 모른다. 층층시하 위계적이고 봉건적인 질서로 짜인 조직문화를 바로잡기만 해도 한국인의 삶에는 숨통이 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에 만족할 수는 없다. 역사는 꿈쩍 않을 것 같은 것들이 무너진 기록으로 넘쳐난다. 19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캔자스주가 노조가입을 금지하는 계약을 불법으로 규정하자 이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재산권을 신성불가침으로 본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기업에는 민주주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바뀔 수 있다. 기업이 차지하는 공간은 영원히 민주주의 예외지대라고 생각해보라. 다수는 영영 민주주의 없이 살아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 정부, 초국가적 기업, 금융자본이 국경을 넘어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 미·중은 우리에게 특정 상품을 쓰라 말라 강요한다. 그들은 우리를 구속하는 결정을 내리지만, 우리는 그 결정에 참여하지 못한다. 다수결? 아무 쓸모 없다. 국경에 갇힌 민주주의로는 속수무책이다.

그동안 민주주의가 확장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민주주의는 자기 영토를 안에서 빼앗기고 밖에 내주면서 축소됐다. 유명무실한 시민권이 민주주의를 껍데기로 만든 것이다. 민주주의는 섬에 갇혔고, 우리 삶은 민주주의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뭔가 해야 한다. 이게 대한항공 직원들이 고통으로 전하는 메시지이다.

<이대근 논설고문>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