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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100년은 인류가 간절히 알기를 바랐던 미래다. 2100년을 예측하기 위해서 인류는 국경을 넘는 지구 공동체가 되어 미래 예측 프로젝트를 수행해 오고 있다. 덕분에 2100년은 우리가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미래가 되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1세기에 일어날 기후변화와 그것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국제기구이다. 1988년에 만들어진 이 단체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전 세계의 학자들이 생산한 과학적, 기술적, 사회경제적 연구 결과를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미래를 예측한다. 그리고 예측은 21세기의 끝, 2100년을 향해 있다.
IPCC는 2014년 다섯 번째 기후평가보고서를 발간했다. 기후학, 물리학, 해양학, 통계학, 사회과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정된 831명의 전문가가 작성한 이 보고서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미래에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에 따른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예측한 네 가지 대표 시나리오다. 가장 절망적인 시나리오대로 높은 수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지구의 평균온도는 1861~1880년에 비해 2.6도에서 4.8도가량 높아질 것이다. 반대로, 가장 희망적인 시나리오대로 배출량 규제가 엄격히 이루어진다면, 0.3도에서 1.7도 상승에 그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 수준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가장 절망적인 시나리오에 가까운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1990년에 시작해 5~7년 간격으로 발행된 다섯 편의 IPCC 보고서는 한결같이 대기 중 누적된 온실가스의 증가와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에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산업화 이전 시기부터 시작된 온실가스 증가는 인간의 활동에 기인했으며, 20세기 중반부터 관측된 온난화 현상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몰디브의 섬들이 곧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바다 밑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만큼이나 2017년의 우리에게 기후변화는 익숙한 미래다.
익숙하다고 해서 모두가 믿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간절히 알기를 바랐던 미래는 이제 적극적으로 외면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가장 유명한 기후변화 회의론자는 아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일 것이다. 그의 트위터는 기후변화가 “불완전한 과학과 조작된 자료”에 기반한 것이며 “사실무근”이고 “비싼 속임수”라는 주장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주장의 뒤에는 의혹을 파는 과학자들이 있다. 과학사학자인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M 콘웨이는 기업이나 정치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산업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에 대한 과학적 주장에 끊임없이 의혹을 불어넣는 전략을 통해 논쟁을 만들어 왔다고 주장한다. 기후변화가 거짓이라는 주장은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과 더불어 대표적으로 만들어진 의혹이라는 것이 그들의 책 <의혹을 팝니다>에 잘 드러나 있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거친 언어에 비해 IPCC 보고서 속 언어는 매우 조심스럽다. 보고서에는 각 예측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얼마나 강력한지, 과학자들 사이에서 어느 수준의 합의에 이르렀는지, 어느 정도의 확신에 기반한 것인지, 그리고 예측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높은지 꼼꼼하게 서술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지구 평균 표면 온도가 증가하면 북반구 고위도 지방의 영구동토층의 너비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확실”하지만, 그 감소폭이 시나리오에 따라 37%에서 81%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은 “중간 수준의 확신”으로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는 주장과 근거, 그리고 그 둘의 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는 과학의 습관이 짙게 배어 있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2100년 지구의 미래는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를 경험할 때 인간의 현재가 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응답이라도 하듯, 지난 몇 주간 미국은 여러 개의 초대형 허리케인을 경험했다. 하비(Harvey)는 8월25일 미국 남부 텍사스주 걸프만에 상륙해, 하이랜즈 지역에서 1318㎜의 비를 뿌렸다. 단일 허리케인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강우량이다.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어마(Irma)가 캐리비안해의 섬나라들을 거쳐 미국 플로리다주에 상륙했다. 어마는 풍속에 따라 허리케인을 분류하는 새피어-심슨 풍속 스케일에서 최고 등급인 5등급으로, 최대 풍속이 시속 295㎞에 달했다. 지난 한 달 사이에 미국 남부를 강타하고 151명의 사망자(9월15일 기준)를 낸 하비와 어마는 미국 역사상 가장 손해를 많이 끼친 허리케인 중 열손가락 안에 꼽히게 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뒤이어 호세(Jose)가 동부 연안에서, 또 다른 5등급 허리케인 마리아(Maria)가 남부의 바다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니 IPCC가 보여주는 ‘미래’는 그 한자어의 의미처럼 ‘오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닌 셈이다.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로 참혹하게 파괴된 도시의 모습은 기후변화 예측이 그 어떤 종류의 미래 예측보다 절박한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9월11일 기고한 ‘음모, 부패, 그리고 기후’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후변화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미국 공화당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특히 그들의 “고의적 무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현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부정은 재난의 예방이나 대비, 복구에 대한 어떤 생산적인 정치적, 정책적 토론도 매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정확하게 예측된 2100년의 미래에는 우리가 지금 산업, 경제, 정치와 같은 사회 전반의 분야에서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흔들림 없이 그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겪을 험난한 고비가 예견되어 있다. 지구와 인간의 미래는 예견된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것에 가까운 모습이 될 것인가.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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