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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최종영 대법원장은 양승태 부산지법원장을 법원행정처 차장에 전보한다. 양승태는 최종영의 행정처 라인이다. 1996년 양승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은 최종영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지휘를 받아 로스쿨 문제를 담당하고 처리했다. 대법원장이 누군가를 차장에 발탁하는 것은 대법관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은 특이하게도 대법관을 제청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문명국 어디에도 없는 제도다. 1948년 제헌헌법 이후 법관회의가 대법관을 제청했다. 그러다 1972년 박정희 유신헌법에서 제청권을 대법원장에게 줬다. 그리고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군사정권은 대법원장을 장악해 사법부를 통제했다.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던 유신정권은 대법원장이 권력으로부터 사법부를 보호하는 구조라고 선전했다. 이치에 닿을 리가 없다. 동서고금에 이런 식으로 구성되는 최고법원이 없는 이유는 동등한 합의체라는 기본 원칙에 어긋나서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장도 일본의 최고재판소장관도 소수의견에 몰리는 일이 많지만, 유독 한국의 대법원장만 항상 다수의견인 비밀이 여기에 있다.

법원행정처 603호에는 양복 차림 남성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그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역대 대법관 사진이 걸린 것으로 생각했다. 꼼꼼히 보니 대법관이 아닌 얼굴도 있었다. 대법관의 산실(産室)이라는 차장실, 사진은 역대 차장들이었다. 603호 출신의 법조계 원로는 “정말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고 했다. 대법원장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그 대가로 대법관에 오르는 것이다.

2월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전담법관 임명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이백규(53·사법연수원 18기)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와 주한길(53·24기) 변호사(서울서부지법 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를 신임 전담법관으로 임명했다. 전담법관은 특정 사건 재판만 맡는 법관으로 15년 이상 법조 경력자 중에서 선발한다. 대법원은 2013년부터 매년 3명씩 소액사건 전담법관을 임명해 전국 5개 지방법원에 배치했다. 연합뉴스

2003년으로 돌아가, 양승태 차장이 취임한 직후 4차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차장 등을 중심으로 하는 서열순 대법관 제청에 반대해 판사 160여명이 연판장에 서명했다. 하지만 최 대법원장은 전임 차장 김용담을 대법관에 제청하고, 대신 대법원장 몫 헌법재판관에 여성 법관 전효숙을 지명해 무마한다. 양 차장은 사법파동에 책임을 지고 최 대법원장에게 사의를 표한다. 2005년 퇴임하는 최종영은 마지막 대법관 제청 카드를, 사표를 반려하고 특허법원장에 보내둔 양승태에게 준다. 이렇게 해서 대법원의 ‘차장 불패’ 신화와 행정처가 지배하는 관료사법 체제는 생명을 이어간다. 양승태는 2011년 대법관에서 퇴임하고 몇 달 뒤 대법원장 임명장을 받는다.

지난해 촛불이 시작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자 서초동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양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퇴임 전에 행사할 두 장의 제청 카드가 온전하겠냐는 것이었다.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가 대선 국면으로까지 이어지면, 강형주 전 차장과 임종헌 현 차장을 챙겨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무렵 판사들이 사법개혁에 관한 학술행사를 준비했고 이를 막으라고 지시받은 판사는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대법원이 이렇게까지 무리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2003년에 대해 나쁜 기억을 가진 양 대법원장 한 사람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에게 남은 임기는 불과 6개월이었다.

오히려 오는 9월 이후로 학술대회를 미뤄야 할 절실한 사정은 차기 대법원장을 노려온 사람들에게 컸다. 대법원장이 다 된 것처럼 움직이던 그들에게, 박근혜의 퇴진에 이은 판사들의 사법개혁 요구는 가슴 뜨끔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되기만 한다면 13장의 대법관 제청 카드를 갖게 되고, 그가 자리에 오르도록 유리한 국면을 조성한 사람도 기회를 얻는다.

6년 전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하자 2003년에 연판장을 돌렸던 판사는 얼마 못 가 법복을 벗는다. 그가 이번 탄핵심판 사건에서 세월호 부분을 울먹이며 변론한 국회 대리인 이용구 변호사다. 지난주 학술대회 저지 의혹이 한창일 때 양 대법원장은 2003년과 비슷하게 여성 변호사 이선애씨를 헌법재판관에 지명했다.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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