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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밀크(1930~1978)는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미국 최초로 선출직 공직자에 뽑힌 이다.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일하다 정적에게 살해당한 그를 기려 제정한 상이 ‘하비 밀크 자유메달’이다. 반기문이 2015년 이 상을 받았다. 이달 출간된 <더 나은 유엔을 위하여>는 “동성애 혐오와 성전환 혐오에 맞서는 싸움에서 보여준 세계적 지도력”을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고 썼다.

‘세계적 지도력’은 한국에선 무력했다. 그가 개신교 연합체 간부들을 만나며 한 말을 요약하면 “제가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게 아니라…. 하지만 성소수자 차별엔 반대”다. “지지하지 않지만 차별엔 반대!” 대선 후보들의 ‘모범답안’이다. 문재인은 2013년 성별·종교·장애·나이·인종·학력·사상 등과 함께 ‘성적 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개신교 단체와 만난 자리에선 추가 입법 불필요를 이유로 법제화에 반대했다. 안희정은 도민인권선언을 주도하고도 “(차별금지법은) 아직은 빠르다”는 입장을 냈다. 법 제정에 동의한다는 이재명은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고 유보했다. 공개 찬성한 이는 심상정이 유일하다.

영화 <밀크> 포스터.

반동성애 세력은 ‘동성애지지’ 프레임으로 묶는다. 선거철에 더 활용한다. 사상검증에 정치인들이 응하면서 프레임에 갇히고, 정교분리도 무너진다. 4·13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박영선이 ‘나라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3당 대표 초청 국회기도회’에 나갔다.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 이거 저희 다 반대한다.” 박영선 말에 청중은 박수를 쳤다. 그도 차별금지법 공동발의자 중 한명이다.

기도회를 주관한 목사 전광훈은 “항복선언!”이라고 기뻐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 난 건 좌파, 종북자들만 좋아하더라”라고 말한 이다. 2011년 8월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향하는 희망버스를 막으라고 어버이연합에 1000만원을 줬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전광훈은 일례다. 반동성애는 반노동, 반세월호 진상규명, 종북몰이 등 우익 운동과 이어진다. 친박·친정부 활동을 해온 어버이연합 등이 반동성애에 참여한 것은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다. 이 어버이연합을 전경련이 지원한 사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확인됐다.

‘동성애 지지’ 프레임은 보수·기독교·정치·재벌과 강고하게 연결된다. ‘정상 대 비정상’, ‘국민 대 비국민’의 프레임을 강화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블랙리스트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 프레임을 깨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제다. 민주화 세력의 존재 이유와도 무관치 않다.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금지를 넣은 인권위법을 만든 게 김대중 때다. 노무현 때 정부가 법제화를 시도했다. 17~19대 국회에서 지금의 야권이 네번 발의했다. 모두 반동성애 세력 반대로 철회·폐기됐다. ‘10년간 시기상조’? 이 문제를 두고 한국 정치는 10년간 뒷걸음쳤다. 2015년 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개신교계에선 처음으로 성소수자 탄압에 반대하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는데도 말이다. 더 늦출 수 없다. 성소수자가 가장 큰 혐오 피해 대상자라는 인권위 조사 결과도 최근 나왔다. 차별금지법은 부세습, 착취, 갑질, 여혐 등 ‘헬조선’의 갖은 차별과 배제, 혐오 철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1981년 프랑스에서 사형제는 ‘인기 있는 야만 행위’였다. 그해 3월 사회당 대선후보 프랑수아 미테랑은 한 정치프로그램에서 “(사형제 지지가 60%라는) 수치를 알지만 선거에 패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양심에 따라 분명 폐지하겠다”고 했다. 여론 흐름을 바꿔 당선된 그는 사형제와 동성애자 차별제도를 폐지했다.

선거에선 표를 계산하기 마련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좌고우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권은, 인간존엄은 거래 가능한 것인가? 법 제정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인가? 혐오·차별에 대한 단호함 없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모바일팀 |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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