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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농구(NBA)에서 코트 내 선수끼리 시비가 붙었을 때 벤치에 있던 선수가 한 발자국이라도 코트에 들어서면 곧장 벌금 500달러가 매겨진다. 자동으로 다음 경기 출전 정지 징계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는 더 심하다. 링크에서 두 선수가 서로 주먹을 날리는 일이 자주 나오는 종목인데, 만약 벤치에서 다른 선수가 나오면 첫발을 뗀 선수에게 벌금 1만달러와 함께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가 추가된다. 2번째로 나온 선수는 5000달러에 5경기 출전 정지 징계다.

그런데 야구는?

지난 8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매니 마차도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투수 요다노 벤추라의 강속구를 등에 맞았다. 곧장 마운드로 뛰어갔고, 벤추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양 팀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뛰어나왔다. 볼티모어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치르고 있는 김현수도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달려가 합세했다. 대개 ‘집단 몸싸움’으로 번역하지만 벤치를 비운다는 뜻의 ‘벤치클리어링’이다. NBA, NHL과 달리 야구에서는 벤치를 비운다고 해서 바로 벌금이 매겨지지 않는다. 싸움의 숫자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트나 링크에서 같은 수의 선수가 겨루는 종목들과 달리 야구는 공격과 수비가 나뉜다. 수비팀은 9명이지만 공격팀은 만루 상황이라 하더라도 1·3루 코치 포함 6명밖에 되지 않는다. 인원수가 맞지 않는다. 벤치에 있는 야수뿐만 아니라 불펜에서 대기 중인 투수들도 다 출동한다. 물론 모두가 주먹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다.

벤치클리어링은 대개 ‘존중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지난달 17일 텍사스와 토론토가 벤치클리어링을 벌였다. 토론토 호세 바티스타의 2루 슬라이딩에 발끈한 텍사스 2루수 루그네드 오도어가 주먹을 날렸다. 앞서 바티스타를 향한 위협구가 발단이었다. 그 위협구는 지난해 포스트시즌 디비전시리즈, 바티스타가 텍사스 상대로 쐐기 3점홈런을 때리고 난 직후 보여준 방망이 던지기에서 비롯됐다.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때리고 방망이를 집어 던지는 것은 승리 팀의 기쁨을 표현하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승리했다고 해서, 이겼으니까 뭐든지 해도 된다는 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졌으니까 닥치고 있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스포츠는 승패에 앞서 종목의 가치에 대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니까 싸움을 하더라도 일단 숫자를 맞춰놓고 시작한다.

메이저리그 최고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토니 라루사 감독은 “야구의 신은 언제나 야구를, 혹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을 때 패배라는 벌을 내린다. 나는 이것을 아주 어렵게 배웠다”고 말했다. 주먹을 날린 오도어 역시 거친 슬라이딩에 대해서는 “같은 상황이 또 되더라도 나는 나를 지킬 것”이라면서도 선수 바티스타에 대해서는 “항상 열심히 플레이하는 존경하는 선수”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20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지난 17일 새벽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여성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_경향 DB.


강남역 살인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말할 것도 없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애달픈 청춘에 대한 존중은커녕 ‘안전 수칙’을 내세우며 피해자의 잘못이라고 떠들었다. 아파트 주민회장은 관리소장에게 욕설과 함께 ‘종놈’ 운운하며 폭언을 퍼부었다. 대학교의 남학생들은 단체 메신저를 통해 입에 담지 못할 말들로 여학생들을 비하하며 낄낄거렸다. 한국사회라는 리그에서 ‘존중’은 사라졌고, 구별 짓기와 혐오, 비하만 남았다. 상대를 존중하는 일은 사라졌고, 승자의 ‘존중받음’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혐오와 비하는 ‘내가 속한 집단’이 더 강한 ‘갑’이라는 저열한 수준의 갑질이다. 하물며 벤치클리어링도 숫자를 맞춰서 힘의 규모를 정리한다. 만약 스포츠라면, 출전 정지를 넘어 리그에서 퇴출시키는 게 답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아 제발 야구라도 좀 봐라.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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