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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이 4~5년마다 하는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2014년 3월부터 세 차례나 ‘등급 보류’ 수모를 겪는 등 4수 끝에 최고등급을 유지한 것이다. 이 소식이 얼마나 기뻤던지 인권위는 지난 24일 결과를 통보받자마자 밤 12시가 다 된 시각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과연 이게 자랑할 만한 일인가.

지난해 8월 판사 출신 이성호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인권위는 인권위법 개정을 주도하는 등 등급 심사 통과에 집중했다. 개정된 법의 내용은 인권위원의 다양성 확보, 선정 과정의 투명성 강화 등 모두 인권기구의 독립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적 기준에 맞춘 것이다.

정작 인권위는 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시행된 개정 인권위법은 11명의 인권위원 중 한쪽 성(性)이 60%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현재 인권위는 남성이 7명, 여성이 4명이다. 지난 3월 새누리당 추천으로 검사 출신의 정상환 상임위원 임명 과정에서 시민사회와의 소통은 없었다. 인권위원 중 절대 다수인 8명이 법조인으로 편중된 구성도 여전하다.

주요 인권 침해 이슈 발생 시 긴급히 의견을 표명하고 적절하게 개입해 피해를 막고 재발 방지에 주력한다는 인권위의 애초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청와대 앞 집회를 금지한 경찰에 대한 재발 방지 권고는 2년이 지나서 나왔다. 한겨울 ‘평화의 소녀상’에서 노숙농성하는 대학생들의 텐트 사용을 허락해달라는 긴급구제 신청도 외면했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면 등급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인권위는 ‘모든 개인의 기본적 인권 보호’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구현’ 등을 설립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금의 인권위는 A등급 자랑이 아니라 스스로 내세운 설립 목적에 맞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김형규기자 fidelio@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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