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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딸을 의원실 인턴으로 채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뒤로만 여야 의원실에서 20여명의 보좌진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여야는 친·인척 보좌진 채용 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내놓는 등 불길 차단에 진땀을 빼고 있다. 국회 사무처도 친·인척 보좌진 채용 규제 방안을 이달 중 내놓기로 했다. 지금 분위기라면 뭔가 바뀌기는 바뀔 모양이다.

가족채용 논란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당의 징계 결정에 앞서 최종 소명을 하기 위해 30일 오전 당사를 방문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수십년 이어진 낡은 관행이 타파 대상이 된 것은 사회 윤리적 기준이 높아져서가 아니다. 그 관행을 더 이상 참아내기 힘들 만큼 사회의 분노지수가 치솟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으로 대변되는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이 그것이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비판 여론의 쓰나미’는 그래서다.

정치권이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편리하고 안전한 방법은 적당히 여론에 편승하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생존법’ 또한 오랜 관행이다. 지금 여야의 보좌진 면직은 그야말로 무차별적이다. ‘갑질’과 ‘특혜’에 해당하는지 사례별로 옥석을 가리기도 전에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처럼 낙인찍는 상황이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부인의 7촌 조카를 비서관으로 채용해 논란이 됐고, 송기석 의원은 형의 처남을 운전기사(7급)로 채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그러나 부인의 7촌 조카와 형의 처남은 법률적 의미의 친·인척 범위 밖이다. 더민주 안호영 의원실의 안호근 비서관은 6촌 동생이라는 이유로 사표를 냈지만 정당을 넘나들며 오랜 전문성과 실력을 갖춘 전문 비서관으로 알려져 있다. 19대 국회 때는 김광진 의원실에서 일하면서 ‘노크 귀순’을 밝혀내기도 했다. 지금 문제가 돼 면직된 친·인척 보좌진들 중에는 의원이 낙선해 국회의원이 아닌 시절에 줄곧 보좌한 경우도 있다. “이미 전문성과 능력이 검증됐는데 친·인척이라고 해서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되느냐”(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친·인척 보좌진’ 논란의 본질은 채용 과정의 갑질과 특혜다. 전문성도 없는 사람을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채용하기, 보좌관 급여 일부를 후원금으로 돌려받기, 보좌진 급여 쪼개 채용 인원 늘리기, 의원실끼리 친·인척 채용 품앗이 등 행태가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투명한 보좌관 채용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치 혐오’와 ‘채용 부조리’가 포개진 지점에 친·인척 보좌진 문제가 놓여 있다. 청년들에게 채용 현장은 금수저·흙수저, 학벌사회, 연줄사회 등 한국 사회 부조리와 미래 없는 삶의 모습이 집약된 곳이다. 그 근저에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분노가 크다. 지금처럼 급한 불 끄고 보자는 식의 면피용 마녀사냥으로만 대응한다면 앞으로도 나아질 것은 없다.

정제혁 기자 jhjung@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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