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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은 병영문화 개선의 일환으로 병사 계급체계를 현행 ‘이병-일병-상병-병장’의 4단계에서 사실상 ‘일병-상병’의 2단계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병 계급은 신병 훈련기간에만 부여하고, 상병 중에서 우수한 인원만 병장으로 진급시키겠다는 것이다. 계급제도 개선에 찬성하는 측은 “현행 4계급 제도는 일제 잔재일 뿐이며, 줄어든 군 복무기간에 맞춰 계급 수를 줄임으로써 왜곡된 서열 문화를 개선해 병영 내 부조리와 폭력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병사들에게는 이미 공식 계급 외에도 월 단위로 21개의 계급이 존재하는 만큼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 4계급은 일제 잔재… 자존감 높이기 위해 반드시 고쳐야


군에서 병사들의 계급체계를 단순하게 변화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고, 이는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에서도 논의 중에 있다. 현재 4계급 체계는 우리 강토를 짓밟았던 일본 제국육군 시절의 계급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일본 제국육군은 병사들의 계급을 이등병-일등병-상등병-병장으로 나누었다. 현재 우리 군의 병사계급과 성격·명칭 등이 똑같다. 이것은 한자로 표기된 계급이기 때문에 번역의 논란도 있을 수 없다. 반면 미국의 병사 계급은 2계급과 3계급 등 해석에 따라 다르게 번역된다.

중국·영국·러시아 등 전통적 군사강국들도 병사계급은 하나이거나 기껏해야 2계급이다. 반면 일본은 아직도 병사의 계급을 4개로 유지하고 있는데, 이름은 삼등사-이등사-일등사-사장 등으로 바꿨다. 이렇게 병사계급을 4계급으로 유지하고 있는 군대는 군사대국 중 일본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한국과 북한뿐일 정도로 특이한 경우다. 그나마 북한은 원래 창군 당시에는 2계급의 병사만 있다가 1998년에 4계급으로 세분화시켰으므로 우리와는 다르다 하겠다. 반면에 우리 군은 일본 제국육군의 계급명을 그대로 차용하였으니 이것은 치욕적이다. 또 36개월 군복무 할 때 4계급 하던 것을 21개월 군복무 시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 역시 상황과 맞지 않다.

따라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에서는 육군이 검토하고 있던 원안인, 자격이 되는 분대장만 병장으로 진급하는 2.5계급 체계 외에도 병사들의 자존감을 상승시키며 현재의 복무기간과 부합하는 여러 가지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를테면 병사계급을 아예 하나로 하고 분대장만 따로 만드는 1.5계급 체계와 더불어 계급의 명칭과 계급장의 디자인까지도 새롭게 적용하는 것 등이다. 군은 병사 상호 간에는 능력의 차이만 있을 뿐 계급의 높고 낮음은 없다고 한다. 병사 상호 간에 존중하라고 해봐야 계급장이 다른데 어떻게 지위고하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그 계급장도 무시하고 실제로는 21개의 계급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 군대다. 계급과 기수가 높다고 억압하고, 계급과 기수가 높으면서도 기량이 떨어진다고 무시받고 하는 것에서 병영의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분화된 계급과 이렇게 세분화된 기수문화가 일제의 잔재임에도 유지해야 할까? 또 기량을 선임에게 전수받는 도제식 교육에서 가혹행위가 나올 가능성이 큼에도 그런 훈련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런 도제식 교육은 교육훈련 시간이 부족할 때 효율적이지만,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에서는 병사들에게 훈련 외의 각종 작업을 일절 시키지 않는 ‘부대관리 민간용역 전환사업’을 추진 중에 있기 때문에 그런 제도와 연계하면 훈련시간이 늘어나 충분히 전술전기를 연마할 수 있다고 본다.

계급장의 디자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부사관 이상은 계급장 밑에 무궁화 꽃으로 장식해 놓았다. 그런데 병사는 달랑 작대기만 있다. 세계에서 이렇게 못생긴 계급장은 찾아볼 수 없다. 세계 최고 학력의 우리 병사들이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계급장을 당연한 듯이 붙이고 있어야 할까? 이런 계급장은 아예 병사들은 무시해도 된다는 심리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올바른 자존감을 갖고 군복무를 해야 한다고 느껴질까.

국정감사로 인해 언론에 유출된 계급체계 변화만이 병영혁신의 전부가 아니다. 계급체계만 해도 계급 수와 명칭, 모양 등 많은 사안을 연구하고 있고, 또 동기는 과연 한 달씩 끊는 것이 맞는지도 검토하고 있다. 병사들의 복무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안과 더불어 시스템 전체를 평가해야지, 하나하나 따로 떼어서 평가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고 해도 일본 제국육군의 병사 계급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쓰고 있는 우리 병사계급은 일제청산을 위해서라도 바꿔야 하는 것이다.

<신인균 | (사)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병영생활관 칸막이 설치 '개인 독립형' 구조로 개선 (출처 : 경향DB)



■ 부사관 직책은 확대하면서 병들만 줄이는 건 앞뒤 안 맞아

손자병법을 보면 ‘선용병자 휴수약사일인(善用兵者 携手若使一人)’이라는 구절이 있다. 용병에 능한 자는 전체 병력을 한 사람이 움직이듯 부대를 운영한다는 의미이다. 이상적으로 양성된 군대라면 부대가 지휘관의 의도대로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전투하면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 대한민국 국군은 어떠할까. 최근 계속된 군 관련 사건·사고 여파로 많은 국민들이 군을 우려하고 있다. 적군에게 가해도 비난받을 가혹행위를 같은 내무반의 전우에게 가해놓고도 전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병사들도 있다. 정부는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까지 소집하며 새로운 대책 마련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각종 개선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그 하나가 병 계급을 간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병 계급 간소화와 병영문화 개선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계급 간소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서열문화가 개선되고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생길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현행 병 계급제도는 이병 3개월, 일병 7개월, 상병 7개월, 병장 4개월이다. 훈련소 입소 때부터 이병이 되어 기초훈련-후반기교육-자대 배치를 거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병이 된다. 간소화 방안을 보면 훈련소 기간에만 이병 계급장을 달게 돼 현행제도와 별 차이가 없다. 또한 간소화 방안에서도 일병-상병 진급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져 현행 제도와 똑같다. 병 계급 간소화 방안이 ‘때가 되면 누구나 진급한다’라는 의식을 바꾸려는 제도라면 그 기능을 전혀 못하게 된다.

오직 한 가지 차이는 아무나 병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문제들이 발생한다. 첫째로 상병들에게 과거에 없던 진급 스트레스를 만들어 병영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 둘째로 병장이 줄면 국방부는 예산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진급을 못한 병사들은 월급을 적게 받는다. 약 1만5000원을 적게 받는 것이지만 13만여원의 월급 총액을 생각하면 적은 돈이 아니다. 셋째로 병장진급을 위한 인센티브를 찾기 어렵고 결국 노력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병사들에게는 병장이 돼 상급자로서 대접을 받는 것이 군생활의 인센티브가 되어왔는데, 새로운 제도는 오히려 군생활의 인센티브를 박탈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병 계급을 ‘일병-상병’으로 줄이는 방안은 국방부가 기존에 추진했던 정책에 정반대된다. 국방부는 올해 3월 현행 4단계의 부사관 계급체계에 ‘현사’라는 직책을 더하여 5단계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유는 부사관의 사기를 높이고 우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없던 계급까지 만들어 가면서 부사관의 사기를 높이겠다면서, 병사들에겐 있던 계급을 한 단계 없애면서 분위기 좋은 병영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이 된다. 앞뒤 논리가 전혀 맞지 않는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셈이다.

만약 병장이 많아 병영사고가 생긴다면 병 계급을 아예 없애버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21개월을 복무하는 우리 병사들에겐 공식적인 계급 이외에도 21개의 계급이 존재한다. 사회를 돌아보면 회사에 들어가서 같은 평사원끼리라도 기수에 따라 선·후배 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문화와 관행을 충분히 반영해 오히려 기수문화를 긍정적인 선·후배 관계로 만들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사회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군대만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식적인 주장이다.

또 병영문화의 문제를 계급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사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지 못하는 시스템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병사들을 관리와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키는 한 명의 군인으로 바라본다면, 계급 간소 방안보다 더 좋은 정책대안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사기와 자발성이 유지되는 군대가 되려면 병사들을 한 명의 성인이자 군인으로 바라보고 자존감을 세워주어야만 한다.

<양욱 |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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