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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을 봤으니 나도 이제 ‘천만 대열’에 확실히 합류한 셈이다. 고단했던 삶의 스틸들은 재미와 눈물이라기보다 여전히 진행되는 오늘의 이야기였다. 그것은 암울했던 지난날의 가난과 이념, 희로애락들이 표정만 달리할 뿐 지금껏 우리 앞에 서성대고 있다는 답답함에 대한 반항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잔상과 교훈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피란지 천막학교에서 처음 만난 ‘덕수’와 ‘달구’의 우정이 파독 광부 시절은 물론 베트남전쟁 그리고 고집스러운 노인이 될 때까지 껌딱지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일종의 ‘부러움’이었다.

나이를 먹고 일상에 떠밀리다보면 우린 때로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산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친구, 우정이다. 이웃이 사촌 되고, 페이스북이 우정의 무대가 되며, 직장동료가 친구가 되다보니 때로 ‘된장 맛 나는 우정’이 그립다.

어린 시절 친구가 최근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소개됐다. 교사를 그만둔 뒤 지팡이 겸 대금을 들고 ‘낭만 가객’으로 살아가는 괴짜 같은 인생이 시청자들 눈에는 별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가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와 전화할 때 순수함 속에 남은 슬픔이 있기에 고맙고 짠했다.

“기발하게 사는구나”라는 나의 시청소감에 그는 “아부지들이 친하게 지내셨듯이 우리도 가깝게 지내자”고 답했다. 그랬었다. 선친끼리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하지만 어느덧 우린 당신들의 나이를 넘었다. 그것도 초고령 세대로는 성이 차지 않아 ‘100세 시대’를 운운하고 있다.

시골 장터 한 구석에서 두 할머니가 담뱃불을 붙이고 있다. 설을 앞두고 구경 삼아 나선 5일장. 오랜 친구 사이인 그들이지만 설에 찾아올 자식 이야기며 손자 자랑에 하루 해가 짧기만 하다. (출처 : 경향DB)


영화 <국제시장>은 광복 70년의 시간 속에서 여전히 진화 중이고 무한경쟁의 현실 앞에 추억은 간이역을 무시하며 질주하는 급행열차를 닮았다. 우정은 날개 없는 사랑이라지만 흑백사진 속의 기억은 날개 없는 추락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듯, 친구란 집단이나 조직에서 떨어져도 염치없이 걸터앉고 싶은 삶의 그루터기다. 소셜네트워크 시대엔 마음만 먹으면 일순간에 친구가 된다. 하지만 만남은 빈번해도 잔정은 없고 댓글은 번잡해도 위로가 없다. 우정은 시간과 관심, 정성의 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직장 핑계, 시간 변명, 자식 구실로 삶의 변두리에 서성였던 서글픈 우정! 들판에 봄기운 돋우면, 외로운 ‘덕수’는 순수했던 ‘달구’를 찾아 나서야 한다. 보고 싶다 친구야!


황용필 | 체육진흥공단 인재경영실장·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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