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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벌써 30여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종교를 넘어서 감동을 주는 시이다. 생후 일주일 만에 뇌성마비가 발생하여 평생을 중증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송명희 시인이 스무 살 무렵에 지었고, 이후 찬양으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작품 ‘나’의 일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8세기를 살다 간 조귀명이라는 문인이 있다.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13세에 이미 문장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나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10세 전후 심각한 병을 앓기 시작한 이래, 평생 이런저런 질병에 심하게 시달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병과 함께 태어나 병과 함께 자랐다고 말하곤 했던 조귀명은, 남들은 활기차게 세상에 진출하는 23세 때 작은 서재에서 지내며 ‘병해(病解)’라는 글을 썼다.

부유한 집 아이는 좋은 음식을 주어도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듯이, 건강한 사람은 건강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 기뻐할 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한 집 아이가 좋은 음식에 감동하는 것처럼, 병든 사람은 잠시나마 고통이 잦아들고 손발이 편안해지는 때가 되면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져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이런 날, 바람 잔 저녁 혹은 새벽비 갠 아침에 지팡이 짚고 천천히 거닐면서 길 가에 핀 꽃이며 서쪽 뜨락에 뜬 달을 바라보기라도 하면 당장이라도 신선이 될 것만 같다. 글을 맺으며 조귀명 역시 이런 말로 자신을 위로한다. “나는 남들에게 없는 고통을 가졌지만, 남들이 알지 못하는 즐거움 또한 가졌다.”

신앙에 의지해서든, 정신력을 발휘해서든,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어떻게든 견뎌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불행을 잠시 잊게 하는 마취제 같은 것이라면, 깨어났을 때 더 큰 고통이 엄습해 올지 모른다. 관건은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남이 가지지 못한 즐거움에 대한 자신만의 깨달음이 얼마나 진실하게 지속되는가에 달려 있다. 남이 듣지 못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 꽃과 달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불행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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